조선 사신이 뜨면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
“누선의 화려함이 도를 넘는다. 막부의 쇼군이 타는 배라면 사신으로서 감히 탄다는 것이 결례이다.” (홍치중, 해사일록)
세계인이 우리 문화에 열광하는 K컬처의 시대다.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에 상륙했던 조선 통신사 행렬은 일본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통신사 행렬이 닿는 곳마다 일본인은 흥분했고, 열광적인 축제의 장을 열었다.
일본은 조선 통신사를 극진히 예우했다. 통신사 입장에서 그 정도가 지나치게 느껴질 정도였다. 홍치중은 강을 건너기 위해 제공된 유람선을 막부 쇼군이 탈 만한 것이라며 탑승을 거부했다. 조선 통신사에게 제공된 배는 눈부시게 장식한 2층 누각의 초호화 유람선이었다. 통신사를 영접하기 위해 오사카에서 특별히 건조한 이 유람선은 제작 비용만 은자 4천냥이 들었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수행 선단의 규모도 고려해 6개월 전부터는 강바닥을 깊게 준설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통신사행이 아니었다. 일본인은 조선 사신들의 손짓, 몸짓 하나하나까지 모두 눈에 담으려고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일찍부터 자리를 선점했고, 주먹밥 예약은 줄을 이었다. 조선 통신사가 탄 선박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근하려던 민간의 작은 배는 물살을 못 이겨 전복되기도 했다. 조선 통신사들은 이런 분위기를 은근히 즐기기라도 하듯 배의 2층 누각에 앉아 구경꾼이 되어 구경꾼들을 구경했다.
조선 통신사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비단 오사카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었다. 사도가와강(현재 이비강), 사카이가와강(현재 오구마강), 나가라강(현재 구로마타강), 고시카와강(현재 기소가와강)에서는 통신사 행렬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자 배다리를 만들었다.
조선 통신사를 위해 줄줄이 이어 붙인 배는 무려 300여 척에 이르렀다. 엄청난 장관이 연출된 배다리는 공사 기간만 2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일회용이었다. 조선 통신사가 돌아가고 나면 바로 철거했다. 원래 배다리는 막부 쇼군만 쓸 수 있었다.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배다리였지만, 조선 국왕의 사절인 통신사만큼은 예외적으로 제공했던 것이다. 이처럼 드물게 만들어지는 장관이라 배다리와 그 위를 지나가는 통신사 행렬을 보기 위해 귀한 집 부녀자들은 며칠 전부터 강변 언덕에 자리를 선점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 통신사는 막부 쇼군만 누리던 특권인 초호화 유람선과 선교를 이용했다. 통신사를 특급으로 예우한 배경에는 조선의 글, 그림, 기예 등 문화를 사모한 까닭이 컸다. 1764년 나고야에서는 통신사와 함께 시나 글을 주고받는 시문 창화에 오와리번의 마쓰다이라 군잔(松平君山)이 자신의 아들은 물론 손자까지 동석시켰다. 이때 군잔은 “삼대가 동석하여 시를 창화하는 것은 희대의 진기한 일이며, 불후의 명예”라고 기록했을 정도이다. 당시 시문창화한 글을 『삼세창화집(三世唱和集)』이라는 문집으로 엮어냈다.
조선의 문화를 몹시 애호했던 일본은 조선에 각종 예능인을 요청했다. 실력이 뛰어난 마상재인(馬上才人), 그림에 뛰어난 화원(畫員)도 인기 만점이었다. 김명국, 한시각, 최북, 김유성, 이성린 등은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명국과 한시각은 일본의 특별 초청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두 차례나 통신사 행렬에 참여했다. 이들은 요즘의 한류 스타였다.
한류 스타 통신사들에게는 기호에 맞춰 미리 준비한 고급 식재료가 제공되었다. 소, 멧돼지, 사슴, 돼지, 닭, 꿩, 오리, 달걀, 도미, 전복, 대구, 청어, 방어, 삼치, 문어, 이세새우, 게, 대합 등의 육식·해산물. 수박, 감, 배, 귤, 향귤, 유자, 포도 등의 수분이 많은 과실류. 양갱, 막대사탕, 용안육, 빙과, 사탕, 카스테라 등은 통신사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일본인들은 네발 달린 짐승의 고기를 즐기지 않아, 도살과 손질에 서툴렀다. 이들은 통신사가 오기 몇 개월 전부터 사육장을 따로 만들어 돼지, 소, 닭 등을 길렀다. 통신사가 일본에 도착하면, 조선 도우장(屠牛場)이 돼지, 소 등을 직접 도살했다. 이렇게 손질된 육류는 조선 통신사 입맛에 맞게 조리되었다.
수백 년 전 조선 통신사는 일본 열도를 달궜다. 통신사는 수준 높은 문화적 역량이 어떻게 타국을 매료시키는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단절과 갈등이 빈번한 현대 국제 사회에서 문화를 매개로 환대의 장을 만들어낸 통신사의 족적은 소프트파워의 힘이 무엇인지 우리를 일깨운다.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16)
심민정 부경대 해양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