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다른 사람의 은행 계좌에 보낸 돈이 압류됐다면 이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기존 법원 판단에 따르면 불가능했다. 수취인 계좌에 돈이 입금되는 순간, 법적으로 수취인(송금받은 사람)의 예금채권이 된다. 따라서 수취인의 채권자가 이 돈을 압류하더라도 송금인은 강제집행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오랜 판례의 확고한 태도였다. 그러나 최근 하급심에서 이러한 기존 판례의 흐름을 거스르고 압류채권자의 ‘부당한 횡재’를 막아 세운 판결이 나왔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A사가 압류채권자 B씨와 국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제3자 이의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사 직원이 실수로 타사의 압류 계좌에 송금한 1억원에 대해 피고인 압류채권자들의 강제집행을 불허한 것이다.
지난해 2월 A사 직원은 직원 급여를 송금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과거 거래처였던 C사의 은행계좌로 1억원을 송금했다. 뒤늦게 착오송금 사실을 깨달았으나 상황을 되돌리긴 어려웠다. C사의 계좌는 이미 채권자인 B씨의 압류·추심명령을 비롯해 조세 압류, 보험료 체납 압류 등이 걸려 있는 ‘지뢰밭’ 계좌였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은 이 1억원을 법원에 공탁했고, 법원은 압류채권자들에게 이 돈을 나눠주는 배당 절차를 진행했다. A사 직원들의 급여가 고스란히 남의 회사 채권자들의 ‘빚잔치’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기존 판례에 따르면 A사가 이 돈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대법원은 2009년 선고한 판결을 통해 송금인 측의 강제집행 불허 청구를 기각했고, 이후 같은 취지의 판결이 하급심에서 잇따랐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송금인과 수취인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가 없더라도 송금이 완료되면 수취인이 은행에 대한 예금채권을 취득한다”며 “송금인은 수취인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질 뿐, 수취인의 채권자가 행한 강제집행의 불허를 구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박 판사는 이 같은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다르게 판단했다.
그는 먼저 강제집행이 ‘채무자의 책임재산(강제집행 대상이 될 수 있는 재산)’에 대해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어 “어떤 재산이 채무자의 책임재산에 해당하는지는 형식이나 명의만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재산의 실질적 귀속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착오로 송금된 1억원은 명의만 수취인의 예금일 뿐 수취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처분할 수 있는 공동담보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판사는 이러한 전향적 판결의 근거로 2009년 대법원 판결 이후 쌓인 대법원의 후속 판례 흐름을 인용했다.
2010년 대법원은 착오송금된 예금에 대해 은행이 함부로 자사 대출금과 상계할 수 없다고 판결한 데 이어, 2018년에는 수취인이 착오송금된 돈을 마음대로 인출해 쓸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놓았다. 모두 수취인에게 실질적인 처분 권한이 제한된다는 취지다.
박 판사는 “명의만을 근거로 송금받은 사람의 채권자가 착오송금액에 강제집행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착오 송금이라는 우연을 이유로 압류채권자들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이익(횡재)을 안겨주고 송금인에게는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주는 부당한 결과가 도출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착오송금 피해자들을 구제할 길이 열릴지 법조계 이목이 쏠린다.
원고를 대리해 승소를 이끈 김서현 변호사(법무법인 비전)는 “기존 판례를 뒤집는 획기적인 판결”이라며 “이러한 취지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판례 변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