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기분이 좋으면 크게 웃거나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런데 미소는 그 의미가 애매할 때가 많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사람들은 이 미소의 의미를 두고 아직도 논란을 벌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경계를 일부러 흐리게 처리하여 표정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서 웃는 듯, 슬픈 듯 보인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내면적 평온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그 진정한 의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만 알 것 같다.
미소는 민족이나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한국인은 미소를 잘 짓지 않는 편이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쓸데없이 웃으면 실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으니 함부로 웃지 말라는 교육을 많이 받아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서양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미소를 잘 짓는 편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자기의 실수로 상대방에게 폐를 끼쳤을 때는 절대 미소 짓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하면 실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고 이는 상대방은 자기를 무시한다고 해서 더 크게 화를 낼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미소를 잘 짓기로 유명하다. 이들은 미안해도 웃고, 화가 나도 웃고, 싫어도 웃고, 거절할 때도 웃고, 곤란할 때도 웃고, 슬퍼도 웃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웃음의 종류가 36개나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이들의 미소는 호감을 나타내기, 긴장을 풀기, 거북한 감정을 숨기기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자신의 실수로 남에게 폐를 끼쳤을 때도 미소를 짓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만남에서의 미소이다. 두 나라 사람은 가정이나 회사에서 종종 미소 때문에 서로를 오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사람이 가벼운 실수를 하고 미안한 마음에 미소를 지으면 성격이 급한 한국 사람은 이 웃음을 비웃음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래서 “지금 웃음이 나와?” “네가 뭘 잘했다고 웃어?”라고 다그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속상하고 화가 나는데 사과해야 할 사람이 미소를 지으면 한국 사람으로서는 열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 오래 체류한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들의 속마음을 잘 모른다고 말한다. 그 웃음의 의미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당신도 나처럼 웃고 화 풀어요”라는 것을 아는 데는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한다.
미소 하나에도 이렇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그것이 종종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오해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문화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울 때 꼭 필요한 역량은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상호문화교육이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에 주목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에포케’라는 판단 중지이다. 후설은 ‘저 사람은 친절하다’, ‘프랑스 사람은 논리적이다’ 등의 판단을 ‘자연적 태도’라고 부르고, 이런 판단을 잠시 중지하고 ‘나는 왜 저 사람이 친절하다고 느끼는가?’, ‘그 친절함은 내 의식 속에 어떻게 구성되는가?’ 등으로 생각해 보기를 권장한다. 이것은 해석하기 힘든 미소 앞에서도 가져야 할 태도인 것 같다.
장한업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