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진료실에서 오랜 시간 환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치료가 잘되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결정적 차이는 병의 무게가 아니라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심지어 조현병이라 할지라도, 치료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약을 꾸준히 먹고, 생활 습관을 조금씩 바꿔보고, 치료자의 조언을 시도해 보는 그 순응성이 병의 예후를 갈라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벼운 증상인데도 “그 약은 부작용 있어서 싫어요”, “내가 뭐가 문제라고 그런 말을 하세요”라며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분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경우 치료는 지지부진하고, 병뿐 아니라 삶 전체가 함께 정체된다. 이것을 나는 ‘치료 순응도’를 넘어선 ‘인생 순응도’라고 부르고 싶다.
A씨는 50대 중반 여성으로, 20년 넘게 강박증과 우울증을 앓아온 분이었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고 약도 이것저것 많이 먹어본 분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 사실 별로 기대는 안 해요. 그런데 한 번만 더 믿어보려고 왔어요.” 나는 약을 조금 조정하고, 규칙적인 생활, 매일 운동 30분 이상 하도록 권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적어보라고 했다. 사실 대단한 처방은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A씨는 정말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자 노력하였고, 운동도 매일 하였다. 감사 일기도 어색하다면서도 꾸준히 적어 왔다. 3개월 후 그녀는 처음으로 “요즘은 아침에 눈 뜨는 게 무섭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약용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우울 증상은 물론 강박 증상도 훨씬 좋아지고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살고 있다.
같은 무렵 진료실에 온 B씨는 4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증상은 A씨보다 훨씬 가벼운 초기 우울증이었다. 그런데 첫 진료부터 그는 방어적이었다. “약은 웬만하면 먹기 싫어요.” “운동요? 저는 원래 운동을 싫어해요.” 그는 어떤 제안을 해도 “그건 저한테 안 맞아요”라는 말로 답했다. 2년이 지난 지금, B씨 상태는 오히려 처음보다 나빠졌다. 병 자체가 악화되었다기보다 변화를 거부하는 그 태도가 그의 삶 전체를 정체시킨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B씨가 A씨보다 훨씬 젊고 사회적 조건도 좋았다는 점이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