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쇄되고 가장 널리 번역됐으며 가장 깊이 사랑받으며 가장 격렬하게 논쟁돼 온 책, 성경만큼 인류사에 크고 깊은 흔적을 남긴 책은 없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는 이 ‘책’ 자체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쓰인 이질적인 문서들이 언제 어떻게 한권으로 묶였는지. 이 책이 어떤 손을 거쳐 어떤 길을 따라 온 세계로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얼마나 많은 문명과 부딪히고 뒤섞이며 서로를 바꾸어 놓았는지….
브루스 고든/ 전경훈 옮김/ 책과함께/ 3만8000원
예일대 교회사 석좌교수인 저자는 책에서 바로 이 성경을 신앙의 대상이 아닌 2000년 동안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여 온 역사의 실체로서 ‘책’의 여정을 전 지구적 스케일로 복원한다.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지나 스마트 애플리케이션(앱)에 이르기까지, 사막의 수도원에서 비잔티움의 대성당을 지나 과테말라의 산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여정은 결코 일방적인 전파의 역사가 아니었다. 성경은 가닿는 곳마다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와 세계관을 바꾸어 놓았고, 동시에 그들의 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성경이 문명을 만들었고, 문명이 다시 성경을 만들었다.
성경은 세계사에서 자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곤 했다.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된 성경이 있는가 하면, 성경으로 글을 깨친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노예주의 위선을 폭로하는 무기로 삼은 성경이 있다. 권력자들이 해석을 독점하려고 평신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 가둔 성경이 있는가 하면, 아메리카 원주민 저자 샘슨 오컴이 식민 지배에 맞서 펼쳐든 성경이 있다. 억압과 해방, 전쟁과 위로, 검열과 계몽. 성경은 바로 이 모든 것의 언어였다.
“오늘날 성경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25억명의 신도를 거느린 세계 종교의 기초를 이룬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오순절주의, 자유주의 개신교와 보수주의 개신교 그리고 무교파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단지 하나의 책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으며 폭넓게 갈리는 해석들에 열려 있는 신성한 텍스트다. 인간의 손에 놓인 성경은 해방의 책이며 저주의 책이기도 하다. 성경이 고취하는 신념들은 지배적인 정통 신앙이 무엇인가에 따라 찬양되기도 하고 저주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