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사기는 개인의 부주의 때문일까, 아니면 거대한 범죄 산업의 결과일까. 이반 프란체스키니·링 리·마크 보의 ‘스캠(scam)’은 온라인 사기를 하나의 사건이 아닌 ‘산업’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스캠을 피해자 개인의 불운으로만 보지 않고, 동남아시아에 뿌리내린 초국경 범죄 구조까지 짚어내며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이반 프란체스키니·링 리·마크 보/ 이정우 옮김/ 산지니/ 2만5000원
이 책에서 말하는 스캠은 단순히 “온라인에서 누가 나를 속였다” 수준의 사기가 아니다. 상대방의 신뢰를 정교하게 파고들어 돈·정보·계정 권한을 빼앗는 행위를 넘어 국경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범죄 산업으로 자리 잡은 ‘비즈니스’다. 저자들은 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필리핀 등지에 형성된 ‘스캠 범죄 단지’를 추적하며 이 산업이 어떻게 사람을 속이고 어떻게 사람을 갈아 넣는지 그 구조와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스캠 피해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메신저를 통해 ‘로맨스·투자·코인·외환(FX)’ 같은 명목으로 유인되고, 배후에는 중국·동남아 조직과 전직 온라인 도박 업계가 구축한 콜센터·서버·결제망이 결합해 있다. 이 ‘공장 같은’ 시스템을 굴리는 노동력은 인신매매·강제 노동으로 끌려온 이들로, 이들 역시 피해자이자 동시에 사기 행위에 동원되는 가해자로 기능한다는 점이 이 산업의 잔혹한 모순이다.
이러한 범죄 단지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저자는 동남아 여러 국가에 자리 잡았던 온라인 도박·불법 카지노 인프라가 코로나19, 규제 강화, 자본 이동 등 여러 요인 속에서 수익이 줄어들자 기존 서버·결제 시스템·인력 네트워크를 스캠 산업으로 재편해 가는 과정을 주목한다. 이미 구축돼 있던 ‘돈이 드나드는 디지털 통로’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하던 콜센터식 구조’가 사랑을 미끼로 한 로맨스 스캠, 투자·코인 사기, 메신저 피싱 같은 다양한 사이버 범죄로 자연스럽게 옮겨붙은 것이다.
책은 정치·경제·치안의 공백, 중국과 동남아 자본의 흐름, 온라인 도박 산업의 흥망, 플랫폼과 결제 시스템의 취약 지점까지 분석하며 왜 이 지역들이 스캠 산업의 허브가 되었는지 짚어낸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들은 한국 시민들이 이미 ‘다른 국가에 거점을 둔 범죄 집단의 주요 표적’이 돼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2024∼2025년 일부 범죄 단지에 대한 단속과 체포가 이어지면서 ‘중요한 진전’이 있었음에도 운영자들이 도피하거나 새로운 국가로 거점을 옮기는 등 놀라운 정도의 회복력과 적응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강제 동원된 노동력 공급을 차단하고 피해자들을 구조해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불법 자본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금융·결제 네트워크를 해체하고, 그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배후 인물들을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고 제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