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버핏, 美 경제사를 通하다

신화 뒤 가려진 개인 성장사 복원
버크셔 60년 경영 시행착오 ‘생생’
코카콜라·애플 등 투자 과정 조망
美 자본주의 성장·기업史 오롯이
한 편의 현대 경제 읽는 재미 쏠쏠

워런 버핏 평전/ 앤드루 킬패트릭·정주용/ 안진환·김기준 옮김/ 윌북/ 4만8000원

 

“다른 사람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하라(Be fearful when others are greedy and greedy when others are fearful).”

세계 최고의 투자자로 불리는 워런 버핏(1930∼)을 상징하는 이 말은 이제 투자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명언이 됐다. 그러나 올해 초 60년 넘게 이끌어온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며 그의 삶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한 시대를 대표한 투자자가 경영 일선에서 퇴장하는 시점에 그의 삶과 철학을 총체적으로 돌아보는 평전이 국내에 출간됐다.

11세에 100달러로 투자를 시작해 약 1465억달러의 자산을 일군 버핏은 단순한 ‘주식 투자의 귀재’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의 삶에는 미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기업 경영의 역사 그리고 부(富)의 사회적 책임이 함께 녹아 있다.

앤드루 킬패트릭·정주용/ 안진환·김기준 옮김/ 윌북/ 4만8000원

‘버핏 전문가’로 불리는 앤드루 킬패트릭은 수십 년 동안 버핏과 그의 가족, 친구, 투자자, 기업 경영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방대한 자료를 추적해 이 평전을 완성했다. 국내에 소개된 버핏 관련 서적 대부분이 투자 기법이나 성공 비결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한 인간의 성장 과정과 미국 경제의 흐름을 함께 조망하는 본격 평전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책은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신화 뒤에 가려진 인간 워런 버핏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버핏은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버는 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여섯 살 때 코카콜라를 묶음으로 사서 낱개로 되팔아 이익을 남겼고, 초등학생 시절에는 껌과 음료를 팔며 용돈을 벌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신문 배달을 했고, 고등학생 무렵에는 친구와 함께 핀볼 기계를 이발소에 설치해 수익을 올렸다. 14살에는 농지를 구입해 임대 수익을 얻었으며 대학에 진학하기 전 이미 상당한 자산을 축적했다.

키윗 플라자 빌딩 꼭대기에 서 있는 워런 버핏.

이 같은 일화는 버핏이 단순히 주식 투자에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업 감각과 숫자 감각을 동시에 갖춘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는 큰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작은 이익을 꾸준히 쌓아가는 방식을 선호했고, 훗날 가치투자 철학의 밑바탕도 이 같은 경험에서 형성됐다.

가치투자론의 대부이자 컬럼비아대에서 버핏을 가르쳤던 벤저민 그레이엄.

버핏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은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과의 만남이었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그레이엄을 사사한 그는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사라는 가치투자의 원칙을 배웠다. 시장 분위기나 단기 주가보다 기업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먼저 살피고, 이해하지 못하는 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이때 확립됐다. 그는 하루에도 수없이 변하는 주가보다 기업이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졌다. 화려한 투자 기법보다 철저한 분석과 인내를 강조한 이유다.



책은 쇠퇴하던 섬유회사였던 버크셔 해서웨이가 세계 최고의 투자회사로 성장하는 과정도 상세하게 복원한다. 버핏은 섬유사업의 한계를 인정한 뒤 보험회사들을 인수해 보험사의 ‘플로트(Float)’를 장기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독창적인 구조를 만들었다. 이어 시즈 캔디를 시작으로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애플 등 세계적 기업에 장기 투자하며 버크셔를 세계 최대 투자회사 가운데 하나로 키워냈다.

코카콜라 투자는 그의 투자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1987년 ‘블랙 먼데이’ 이후 시장이 극심한 공포에 빠졌을 때 그는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와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높이 평가해 코카콜라 주식을 대거 매입했다. 당시에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투자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후 코카콜라는 버크셔를 대표하는 성공 투자 사례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버핏의 성공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버크셔의 섬유사업을 끝내 되살리지 못했던 실패와 항공사 투자에서의 시행착오도 숨김없이 다룬다. 버핏은 한때 “항공주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후 항공사 주식을 대거 매입했다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손실을 인정하고 모두 처분하기도 했다. 그는 여러 차례 “실패는 투자자의 수업료”라고 말하며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대목은 버핏을 완벽한 투자 영웅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수정하는 투자자로 이해하게 한다.

인간적인 면모도 흥미롭다. 세계 최고 부호 가운데 한 명이지만 그는 1958년 3만1500달러에 구입한 미국 오마하의 집에서 70년 가까이 살아왔다. 화려한 별장이나 요트 대신 햄버거와 콜라를 즐기고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는 소박한 생활을 이어갔다. 하루 대부분을 독서에 할애하며 “지식은 복리처럼 쌓인다”는 신념을 실천한 점 역시 오늘의 버핏을 만든 중요한 자산으로 소개된다.

워런 버핏이 빌 게이츠(왼쪽)와 2001년 11월 오마하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빌 게이츠와의 우정도 눈길을 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었지만 한 차례 긴 대화를 계기로 평생 친구가 됐다. 이후 버핏은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고 상당액을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아이들에게 거대한 재산을 남기는 것보다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더 의미 있다”는 그의 신념은 2010년 빌 게이츠와 함께 시작한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운동으로 이어졌다. 세계 억만장자들에게 생전에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자고 제안한 이 운동에는 수백 명의 기업인과 자산가가 동참했다. 돈을 버는 능력만큼이나 돈을 쓰는 책임도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700쪽이 넘는 이른바 ‘벽돌책’이지만 풍부한 인터뷰와 다양한 일화, 미국 경제와 기업사의 흐름이 촘촘하게 엮여 있어 한 편의 현대 경제사를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버핏은 “가격은 당신이 지불하는 것이고, 가치는 당신이 얻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평전은 한 투자가의 성공담을 넘어 한 인간이 원칙과 절제, 신뢰를 바탕으로 어떻게 시대를 대표하는 투자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