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개 지표 따져 점수 산출 구조 온실가스 배출 속도는 줄었지만 산불 등 영향 생태계 부문 취약 기후정책에 더 엄격한 잣대 필요
177개국 중 37위. 한국이 미국 예일대가 평가한 ‘환경성과지수(EPI)’에서 받은 순위다. 예일대는 2년 주기로 각국의 환경성과를 평가한다. 대기·수질오염 저감, 생물다양성 보호, 온실가스 감축 등 47개 지표가 종합돼 있다. 2024년 58위였으니, 2년 만에 21단계나 뛰어오른 성적이다. 반가운 소식 같지만, 데이터를 자세히 보면 의문이 남는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순위가 크게 뛰었을까.
답을 찾으려면 이 순위가 뭘 보고 매겨지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EPI 내 국가별 순위는 정책이 아닌 실제 측정된 결과를 기반으로 한다. 대기 중 온실가스 배출량, 위성으로 찍은 산림 면적, 오염물질 노출 수치 등이 대표적이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여기에 중요한 특징이 하나 더 있다. EPI 내 기후대응 항목 점수는 ‘지금 얼마나 배출하느냐’가 아니라 ‘배출량이 어떤 흐름으로 움직이느냐’를 본다. 배출량이 줄어드는 속도 자체가 최근 들어 빨라진 나라가 더 좋은 점수를 받는 구조다. 올해 한국이 기후대응 점수에서 24점 넘게 뛴 것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단, 이 항목은 애초에 배출량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도 이번 평가에서 기후대응 점수가 18.82점이나 뛰었다. 그런데도 순위는 125위에 머문다. 흐름은 개선되고 있지만, 애초에 배출량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 순위까지 끌어올리기엔 부족했다는 뜻이다.
27위를 기록한 미국 역시 순위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이번 평가에 사용된 데이터 상당수는 2024년을 기준으로 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파리기후협정 재탈퇴나 기후예산 삭감 등으로 인한 배출량 증가 추세 같은 최근 변화는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실제로 예일대 측도 미국이 환경관리 항목은 좋았으나 생태계 보호·기후대응에서는 부진했다고 밝혔다.
앞서 유엔환경계획(UNEP)은 ‘2025년 배출량 격차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할 경우 지구 전체 온난화 전망치가 0.1도가량 더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0.1도는 작은 숫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올라온 연구에 의하면 지구 평균 기온이 마지노선인 1.5도를 넘어선 구간에서 0.1도마다 그린란드 빙상 붕괴나 아마존 열대우림 고사 같은 돌이키기 힘든 임계점을 넘을 위험이 1.5%씩 커진다.
그래서 한국은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세부 항목 중 기후대응 점수는 36위로 나쁘지 않다. 폐기물 등 환경관리 항목은 상위권이다. 그러나 생태계 건강성 점수는 103위로 하위권이다. 그중에서도 산림 손실 지표가 가장 나쁜 점수를 받았다. 지난 몇 년간 남부 지역을 휩쓸었던 여러 산불 등의 영향 때문이다.
정리하면 한국은 폐기물 등 환경문제를 관리하는 일은 능숙하지만, 생태계를 지키는 일은 잘못하고 있다는 것. 올해 평가에서 순위가 오른 것 역시 배출 증가 속도가 이전 평가 시점보다 둔화한 덕이지, 자연을 잘 보전해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후정책만큼은 제대로 가고 있다고 반문할 수 있다. 답은 꼭 그렇지도 않다. 프랑스가 좋은 예시다. 올해 프랑스는 EPI에서 7위로 상위권을 차지했으나, 최근 프랑스 기후고등위원회는 자국 성적에 박한 평가를 내렸다. 온실가스 감축 속도가 2023년 6.8%에서 2025년 2.1%로 계속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위가 좋다고 궤적까지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에서 일부 힌트를 찾았다. 지난해 OECD 연구 결과, 산업·전력·건물·수송 4개 부문 모두에서 기후정책이 엄격할수록 실제 감축 효과도 크게 나타나는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이해관계자 반발을 피하려 정책을 물렁하게 설계하면, 그만큼 감축 효과도 줄어들었다.
결국 순위를 끌어올린 건 배출 둔화라는 정책의 결과였지, 정책 자체의 엄격함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순위 하나로 한국이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를 단정할 수는 없다. 생태계는 여전히 매우 취약하고, 기후정책의 이행력 역시 아직 시험대에 있다. 여러 지표를 겹쳐 봐야 진짜 그림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