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이 세계적 권위를 지닌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한강은 15일(현지시간) 아비뇽 페스티벌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 교황청 명예극장에서 프랑스 연출가가 자신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삼아 선보인 ‘새’ 낭독 공연 마지막에 깜짝 출연자로 무대에 올라 제주 4·3사건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참상을 서술한 소설 후반부를 차분히 낭독했다.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각각 소설 속 경하와 인선을 맡아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두 인물의 독백과 대화를 풀어낸 후였다.
한강은 공연 전 가진 간담회에서 낭독 공연에 대해 “책을 읽는 것이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공연은 함께하는 경험”이라며 “문장이 만들어내는 감각과 감정에 더해 배우들의 목소리와 움직임, 표정까지 함께 음미할 수 있는 무대”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생각한 문장과 배우가 자기 몸을 통해 해석해 내보내는 음악적 요소는 서로 다르다”며 “‘작별하지 않는다’를 책으로만 읽은 분들이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연을 본 프랑스 관객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한국의 비극적 역사에 놀라움을 표하며 배우들의 연기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어를 공식 초청언어로 선정하고 한강을 초청해 지난 12일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했다. 제주 4·3을 다룬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탈리아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관객을 만났다.
한강은 이날 별도로 열린 한국 취재진과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심화하는 혐오를 “극복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희망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한강은 “혐오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라며 “어떻게 하면 이 혐오의 시대에서 방향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다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혐오를 문제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좋은 일”이라며 “혐오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문제라는 데 우리가 일치된 생각을 갖고 있다면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한강은 이런 혐오의 문제가 최근 불거진 배재고 야구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구호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고 봤다. 한강은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 친구들도 이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뭘 할 수 있을까’, ‘기성세대로서 어떻게 하다가 우리는 이렇게 실패를 하게 됐나’ 이런 고민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중요한 사건이 나타났을 때 충격과 놀라움 속에서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된다”며 “만약 이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 것이라면,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를 잘 포착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충격이 또 다른 충격을 덮고, 그다음 충격이 이전 충격을 덮어서 이렇게 쓸려가 버리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며 개별 사건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말고 사회적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강이 한국 언론과 공개적으로 질의응답을 한 것은 2024년 노벨문학상 시상식 이후 처음이다. 그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며 “그래서 좀 칩거했는데, 지금은 관심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