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업계가 인공지능 전환(AX)에 박차를 가한다. 게임 개발은 물론, 관리와 운영 등 전반에 걸쳐 인공지능(AI)을 도입하고 있다. 일부 게임사는 아예 AI를 핵심 콘텐츠로 활용 중이다. 게임 속 캐릭터에 AI를 접목해 이용자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기능을 넣는 식이다. 게임업계 현장에선 AI가 단순히 업무 효율성을 높여주는 도구에서 벗어나, 게임 콘텐츠의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기능’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개발·운영 전반으로 스며든 AI
‘바르코 3D’는 글자나 사진만 입력하면 3차원(3D) 그래픽을 만들어 주는 AI다. 게임 속 3차원의 가상 세계를 만드는 과정 대부분을 자동화한다. 이 밖에 엔씨는 음성 데이터로 캐릭터의 표정과 움직임을 자동 생성하는 ‘바르코 싱크페이스’, 문맥과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바르코 번역’, 24시간 고객 응대 챗봇 ‘엔서(NCER)’ 등을 개발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엔씨는 게임 내 부정행위 차단에도 AI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예로 모바일게임 ‘리니지M’에 AI 기반 불법 프로그램 탐지 모델 3종을 도입해 약 10개월간 자동사냥 프로그램(봇)을 감시했다. 이 기간 적발한 부정 계정은 13만9649개, 보안 인증을 통한 제재는 569만여회에 달한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TL’에는 핵 사용자나 부당한 이득을 노리는 이용자를 감지해 게임 안에서 직접 응징하는 AI ‘심안의 기사’를 운영 중이다.
넷마블은 회사 직원이 개발과 운영, 관리 등 업무 목적에 맞는 AI 에이전트를 직접 제작하고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단순히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직원에게 맞춤형 AI 비서를 제공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개발자에겐 소프트웨어 코딩을 도와주는 전담 비서를 붙여주는 식이다. 넷마블 관계자는 “코드 에이전트와 보고서 작성 에이전트를 포함한 다양한 업무용 AI 에이전트를 연구·개발 중”이라며 “반복적인 업무는 AI가 수행하고 구성원은 기획과 의사결정 등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하는 업무 환경을 단계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넷마블 역시 게임 운영에서 이미 AI가 상당한 역할을 맡고 있다. 불법 게임 프로그램을 찾는 ‘AI 이상 감지 시스템’을 활용, 비정상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이용자를 잡아낸다. 최근 흥행작인 ‘RF 온라인 넥스트’와 ‘뱀피르’를 비롯해 신작 ‘솔: 인챈트’에도 적용, 게임 출시 초기부터 안정적인 운영 환경을 구축했다.
중소형 게임사도 AI 도입 행렬에 합류했다. 모바일게임 기업 베이글코드는 올해 상반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AI 에이전트 ‘에이전트B’ 배포를 완료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에이전트B는 사내 데이터와 업무 흐름을 읽고, 각 구성원의 문서 작성과 정보 정리, 업무 추적과 같은 개인 실무를 24시간 지원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반복 확인과 정리 업무는 에이전트의 지원을 받고 구성원은 게임의 재미, 시장성, 운영 방향, 비즈니스 가치와 같은 핵심 판단에 집중할 예정이다. 최근 사내 데이터&AI 팀에서 엔지니어 3명이 각자의 에이전트와 협업해 통상 수 주가 걸리던 대용량 데이터 인프라 제어 플랫폼 구현을 3일 만에 완료하는 등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다. 베이글코드 관계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개인 에이전트 기반 협업 방식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AI 에이전트의 팀 단위 협업 흐름을 정교화하고 다양한 조직 업무에 적용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AI가 아예 게임의 ‘재미’ 요소로
한 걸음 더 나아가 AI를 게임의 핵심 재미로 끌어올린 사례도 등장했다. 크래프톤 산하 스튜디오 렐루게임즈가 선보인 ‘미메시스’가 대표적이다. 이 게임은 AI 기반 NPC(게임 내 가상 캐릭터) ‘미메시스’가 이용자의 움직임과 음성을 실시간으로 흉내 내며 동료들 사이에 스며드는 4인 협동 공포 게임이다. 게임 속 AI는 이용자들의 목소리와 행동 패턴을 분석해 자신이 게임 이용자인 것처럼 속인다. 이용자들은 정체를 숨기며 자신들을 위협하는 AI를 피해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AI가 시스템의 보조 장치가 아니라 게임 콘텐츠의 핵심 장치로 작동하는, 이른바 ‘AI 네이티브 게임’인 셈이다. 인기는 폭발적이다. 지난해 10월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얼리액세스(미리 해 보기)로 출시한 지 50일 만에 100만장이 팔렸고, 최근 글로벌 누적 판매량 200만장을 넘어섰다. 일본 최대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 ‘세덱(CEDEC) 어워드 2026’에서는 한국 게임 최초로 게임 디자인 부문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김민정 렐루게임즈 대표는 “AI가 개발을 돕는 도구를 넘어, 게임의 재미 자체를 만드는 단계로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크래프톤은 대표작 배틀그라운드에도 AI 동료를 붙였다. 지난달 공개한 신규 모드 ‘Ally Duo(엘라이 듀오)’는 이용자가 AI 캐릭터 ‘엘라’와 2인 팀을 이뤄 플레이하는 방식이다. 엘라는 정해진 조건대로만 반응하는 기존 NPC와 달리, 이용자의 음성 명령과 시시각각 변하는 전황을 함께 이해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함께 게임하는 캐릭터(CPC)’다. 엔비디아의 온디바이스 소형 언어모델 기술을 활용해 음성 인식(STT)과 합성(TTS)으로 이용자와 실시간 소통한다.
업계에서는 AI 활용이 그래픽·시나리오 같은 단순 제작 보조를 넘어 NPC 행동 설계와 이용자 맞춤형 콘텐츠, 운영 자동화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고 본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AI를 얼마나 게임의 재미와 서비스 품질로 연결하느냐가 경쟁력의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