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역대급 성장의 역설 고유가·고환율·고금리 3高 신음 美 통상 전략 대응·유동성 관리 ‘반도체 편중’ 수출선 다변화를
1980년대 후반 경상수지 흑자와 3저 호황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저금리, 저유가, 저환율(엔고)의 3저 호황은 1980년대 초 물가안정을 중요시하던 정부의 안정화 정책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1980년대 후반 대외 여건의 변화가 중요한 요인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의 평가절상과 1986년에 시작된 미·일 반도체 협정은 일본 반도체 산업을 침체시키고 우리 수출을 늘리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에 3저 호황과 경상수지 흑자의 부작용 또한 컸다. 미국의 통상 압력이 커지면서 자본자유화와 변동환율제도 선택으로 수출이 감소했으며 시중 유동성 증가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결국 구조조정 지연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반도체 특수로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경험하고 있다. 그때와 같이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주가와 주택 가격이 오르고 성장률도 큰 폭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무역규제로 한국과 대만이 반사이익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대중국 무역규제로 우리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 물론 차이도 있다. 중동전쟁으로 고유가에 미국의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으로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늘어나면서 환율이 오르고 있다. 그때와 달리 고유가, 고환율, 고금리의 3고 여건을 맞고 있는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의 부작용과 경제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3저 호황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먼저 미국의 통상 전략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미국은 달러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통상 전략을 사용해 왔다. 자본자유화를 통해 무역적자로 유출된 달러를 금융부문에서 회수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보조금 지원으로, 지금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관세를 경감해 주는 대가로 대미 직접투자를 늘리게 하는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한 무역규제로 반사이익을 얻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더 많은 직접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대미 투자 증가는 환율과 실업률을 높이면서 내수를 침체시킨다는 점에서 정책당국은 미국에 편중된 수출선을 다변화해야 한다. 또한 국내 기업 경영환경을 개선해 대미 투자를 국내 투자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유동성 관리로 자산가격 버블을 막고 물가와 임금을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시중 유동성은 3개 채널로 늘어난다. 한국은행의 저금리와 양적완화의 경우나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로 국채 발행이 늘어날 경우 증가한다. 대외 부문에서는 경상수지 흑자도 통화량을 늘리는 요인이다. 3저 호황 시기에는 경상수지 흑자로 늘어난 시중 유동성을 잘 관리하지 못해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자산가격 버블로 외환위기를 겪었다. 지금은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되고 내수 회복을 위한 정부의 확대 재정정책 또한 전망된다. 재정지출 증가에다가 경상수지 흑자가 추가되면서 통화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 우려되는 것이다. 통화당국은 금리를 높이고 재정당국은 과도한 재정적자를 줄여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 물가와 임금을 안정시켜야 한다.
신산업 육성으로 반도체에 편중된 수출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수출구조는 지나치게 반도체에 편중되어 있다.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의 기술 발전을 고려하면 반도체 시장독점이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반도체 특수가 감소되었을 때 한국 경제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급격한 성장률 둔화와 경상수지 악화로 금융위기나 외환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정책당국은 신산업 정책으로 반도체에 편중된 산업과 수출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미국은 대중국 무역규제를 통해 중국의 기술 발전을 늦추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는 한국은 이 기회를 활용해 반도체 이외의 신산업 기술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 특수로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면서 재도약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면서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주가와 주택 가격 버블 붕괴로 금융위기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는 변화된 미국의 통상 전략에 적극 대응하고 경상수지 흑자로 늘어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 정책당국은 1980년 후반 경상수지 흑자와 3저 호황의 경험을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