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축으로 한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신규 원전 건설과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력수요 증가가 곧바로 원전 확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방사성폐기물 처리 등 이른바 ‘숨은 비용’까지 따져 원전의 전 생애 경제성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정부 등에 따르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력 수요 급증과 전원 안정화를 위해 신규 원전과 SMR 도입 여부를 전문가 의견 수렴과 국민 공론화를 거쳐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3대 메가 프로젝트’ 추진에 필요한 전력 확보 방안으로 기존 제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한편 추가 원전 도입 가능성까지 검토하겠다는 취지다.
주무부처가 신규 원전과 SMR 도입 검토에 착수한 데 이어 규제기관도 제도 정비에 나서면서 원전 확대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SMR 상용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안전규제 체계 구축에 나섰다. 지난 2월 발표한 로드맵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발전용 경수로 중심의 규제를 선박용과 열공급용, 수소생산용 등 다양한 차세대 원자로까지 확대하고 SMR 전용 기술기준 마련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원전 사후처리 비용 291조 추산”…환경단체, 경제성 재평가 촉구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를 앞세워 원전 활용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기후·환경단체들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에 원전이 충분히 ‘값싼 전력원’인지 전 생애 경제성을 다시 따져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원전이 상용화된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과도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원전 관련 정부 예산은 2007년 4734억원에서 2026년 1조4582억원으로 약 3.1배 늘었다. 20년간 누적 지출은 약 17조540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 예산정보시스템에 등록된 2007~2026년 원자력 관련 사업 1429개 항목을 분석한 결과다.
특히 연구개발(R&D) 예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온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들은 한때 감소하던 R&D 예산이 지난해와 올해 다시 연간 5900억원대로 증가했다며 “일반적으로 성숙한 기술은 상용화 이후 연구개발 지원이 줄어들지만 원전은 도입된 지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공적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전이 ‘값싼 전력’이라는 논리도 정면 반박했다.
이들은 한전이 재무제표상 잡아놓은 ‘원전 해체’와 ‘방사성폐기물 처리’ 관련 충당 부채가 약 27조9579억원이라며 이는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수치라고 주장했다. 충당부채는 앞으로 돈을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높지만, 정확히 언제 얼마가 나갈지는 확정되지 않은 비용을 미리 부채로 잡아두는 회계 항목이다.
‘고리1호기’를 실제 비용이 장부상 추정치를 웃도는 사례로 제시했다. 국내 최초 해체 원전인 고리1호기의 승인 해체비용은 사용후핵연료 처분비용을 제외하고도 1조713억원이다. 이는 한수원이 재무제표에 반영한 전체 원전 해체충당부채를 보유 원전 수로 나눈 호기당 평균 약 9000억원보다 1700억원가량 많다. 이들은 “실제 승인된 해체비용이 장부상 호기당 충당부채를 이미 웃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환경단체는 원전 사후처리 미래비용을 보수적으로 117조~137조 원, 중간 수준으로 194조~291조 원으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비용은 결국 미래 전기요금이나 국가재정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이들은 “정부는 AI·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증가를 신규 원전과 SMR 확대의 주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며 “하지만 전력수요 증가가 원전이 가장 경제적인 대안이라는 결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규 원전과 SMR 확대를 결정하기 전에 경제성 평가 방식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정부 지원과 안전규제, 해체와 방사성폐기물 처분까지 포함한 전 생애 비용을 기준으로 원전의 경제성 다시 평가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