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은 1992년 미국 뉴욕 ‘스톰킹 아트센터’ 야외에 이 같은 조각 작품 ‘UFO를 기다리며’를 설치, 전시했다. 작품 속 데드 마스크로 등장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는 듯한 백남준은 이 작품에서 마치 지구 자체가 더 큰 우주적 관계망 속 하나의 마디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묻는 듯했다.
그는 이에 앞서 1984년 1월1일 정오에도 파리 퐁피두센터와 뉴욕을 인공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결한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다소 굳은 듯한 표정으로 퍼포먼스를 펼치는 독일 출신 설치 미술가이자 행위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 깃털을 들고 난해한 연주를 하는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 흥겨운 음악과 맞춰 경쾌하게 춤을 추는 샹송 가수 이브 몽탕….
백남준은 이 같은 쇼를 통해 소설 ‘1984’에서 텔레비전 등을 활용한 암울한 감시통제 사회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견한 조지 오웰의 미래 전망이 틀렸다고 웅변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의 예술은 ‘위성 예술’을 넘어, 자신이 명명한, ‘스페이스 아트’(공간과 시간을 동시에 다루는 예술)로 확장되고 있었다.
1991년 작 ‘버추얼 비너스로 향하는 우주선’은 알루미늄 구조와 네온, 13인치 TV 36대를 결합해 거대한 로켓의 형상을 만든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비디오 화면에서는 불상과 악보, 공상과학적 이미지 등이 빠르게 교차하는데, 쌓아 올린 TV 제일 위에 석조 불두 조각이 인상적이다. 오래된 조각과 전자기술, 과거와 미래의 이미지로 구성된 로켓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싣고 가상의 행성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시공간을 그려낸다. 중국 타이캉 아트뮤지엄 소장품으로 국내에선 처음 선보인다.
6대의 8인치 TV를 방사형으로 배치한 1990년 비디오 작품 ‘시리우스’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항성인 시리우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중앙의 원판과 금속 프레임에는 ‘북두성’, ‘남십자성’과 같은 천체와 관련된 문자가 쓰여 있다. 백남준은 화면에 흐르는 빛과 움직이는 이미지, 문자와 기호를 결합해 새로운 시리우스를 만들었다.
10월 4일까지 펼쳐지는 또 다른 전시 ‘달들’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백남준의 말에서 시작한다. 백남준은 과거 5만년 동안 인류에게 어두워진 뒤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달뿐이었다며 “그래서 사람들은 달을 바라봤다. 나는 이제 TV로 달을 창조해 보려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구석의 별도 홀에 설치된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그의 말처럼 TV로 달을 구현한 작품이다. 1965년 뉴욕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는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달의 주기를 12대의 TV로 형상화했는데, 2000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에서는 ‘E-달(E-Moon)’이라는 영상이 추가돼 13대의 모니터로 새롭게 선보였다.
또 다른 비디오 아트 ‘거북’은 1993년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에서 처음 선보인 대형 작품이다. 166대의 TV 모니터를 거북 형상으로 배열한 것으로, 신화와 역사에 관한 백남준의 인문학적 사유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거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문화권에서 우주, 창조, 어머니, 지혜, 복 등을 상징하는 동물. 백남준은 미디어와 동물을 병렬 배치해 자연과 기술을 동등한 층위에 놓고 거북의 신화적 상징성을 통해 세계 각지의 민속적 가치를 하나로 연결하려 했다.
이 전시에는 백남준 외에도 김덕희, 박고은, 박소영, ‘우주여행자 언해피’, 이지연 작가 등이 참여해 동시대 작업을 통해 다양한 우주관을 제안한다.
전시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국내외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학술 프로그램과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실험하는 기술랩도 마련된다. 관객 참여 행사도 함께 열려 관객들은 소리와 움직임, 연구와 기술, 참여를 통해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백남준의 행성’은 전시장 밖으로도 확장된다. PSK홀딩스의 경기도 판교캠퍼스 ‘NJP 라운지’, 이화여대 창립 140주년 연계 전시 ‘EMAP 2026’, 한국영상자료원의 특별상영회 ‘백남준 비디오 코스모스’ 등 다양한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관을 넘어 다양한 관객과 만난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은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서로 다른 인간과 문화, 매체와 사유가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 예술가였다”며 “이번 행사는 그의 예술을 과거에 머문 기념비가 아니라 오늘의 예술가와 연구자, 기술자, 시민이 함께 접속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열린 세계로 다시 만나고자 하는 자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