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과학기술계의 이목을 끄는 소식이 전해졌다. 1988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세계적 생화학자 하르트무트 미헬이 중국 지린대학교 전임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소장을 지낸 세계적 석학이다. 미국과 유럽의 정상급 과학자들이 잇달아 중국 대학과 연구기관으로 향하고 있다. 과거 해외 중국인 과학자의 귀국에 집중했던 중국은 이제 국적을 초월해 세계 최고 수준의 두뇌를 끌어들이는 ‘인재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과학자 영입이 아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양자기술, 바이오 등 미래 산업패권을 선점하려는 국가 전략이다. 최첨단 기술은 특허와 설계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연구 경험과 공정기술,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결합될 때 비로소 새로운 기술이 탄생한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이미 이 같은 성공을 경험한 역사가 있다. 박정희 시대 정부는 ‘공업입국’을 국가 목표로 삼고 해외에서 활동하던 우리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과감하게 귀국시키는 정책을 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덕연구단지는 이렇게 탄생했고, 이들이 뿌린 씨앗은 반도체와 전자, 정보통신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우려스럽다. 최근 수년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국가 전략산업에서 핵심 연구인력이 중국 기업으로 이직하면서 국가 핵심기술이 유출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전직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D램 핵심기술 유출 사건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 유출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기술문서 몇 장이 넘어간 것이 아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축적된 연구 경험과 공정기술, 생산 노하우가 함께 경쟁국으로 이전된 것이다.
산업스파이의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술문서나 설계도를 훔쳤다면 이제는 핵심 연구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사람 한 명이 수십 권의 기술자료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경쟁국들은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산업정책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생산시설을 확충하는 데는 과감하지만 정작 미래 기술을 개발할 인재를 키우고 지키는 전략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첨단산업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만큼, 아무리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세워도 핵심 연구자가 해외로 빠져나간다면 기술 초격차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이러한 인재 정책은 반도체 공장 착공식처럼 화려한 행사도 없고, 수조 원 규모의 투자 발표처럼 정치적으로 가시적인 효과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이보다 중요한 투자는 없다. 세계적 연구자 한 명을 키우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그 인재가 해외로 떠나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하다. 한 번 유출된 기술과 인재를 되돌리는 건 훨씬 더 어렵다.
이제 산업정책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워야 한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만큼, 아니 그보다 먼저 국가 차원의 인재 관리 전략이 중요하다. 해외 우수 과학자를 적극 유치하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 연구자들이 돌아올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국내 핵심 연구인력에 대한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국가핵심기술 연구자를 체계적으로 보호하며, 산업스파이와 기술 유출에 대한 대응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공장은 돈으로 지을 수 있지만 인재는 시간으로 만든다. 사람을 잃으면 기술을 잃고, 기술을 잃으면 미래를 잃는다. 21세기 산업패권은 사람을 얼마나 모으고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