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치킨집에 호출된 양복저고리

2019년 5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던 검찰총장은 갑자기 양복저고리를 벗어 흔들며 작심한 듯 말했다. “지금 뭐가 흔들리나. 옷이 흔들린다. 흔드는 것은 어디인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싶어도 정치권이 흔들어대니 제아무리 검찰이어도 버틸 재간이 있겠냐는 하소연이었다. 퇴임을 두 달 앞둔 그를 바라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흔들리는 옷도 떳떳한 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시간이 흘러 윤석열 정권의 검찰이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를 주가조작 혐의로 ‘출장조사’했다. 전직 대통령들도 피하지 못했던 검찰청 출두였기에 논란이 컸다. 당시 야당의 한 최고위원은 “앞으로 피의자들이 ‘검찰 당신들, 조사하러 치킨집으로 와’ 이러면 어떡할 거냐”고 질타했다. 이후 검찰이 김씨를 불기소 처분하는 이유를 장장 4시간에 걸쳐 브리핑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검찰이 불기소 이유를 이토록 구구절절 설명한 적이 또 있었을까. 양복저고리가 바람 부는 날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정권의 몰락 이후 김씨는 특검 수사 끝에 2심에서 같은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현재 상고심을 앞두고 있다.

 

배민영 정치부 기자

이 사건은 더 빨리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양복저고리를 흔들던 검찰총장 후임으로 윤석열씨가 내정돼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섰던 2019년 7월에 이미 김씨의 수상한 주식 매매가 도마에 올랐다. 의혹을 제기한 쪽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윤씨를 방어한 쪽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윤씨는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지원에 힘입어 검찰총장이 됐고, 검찰 특별수사부(현 반부패수사부)는 규모를 키우며 어느 때보다 막강해졌다. 그런데 검찰의 칼날은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엔 번뜩이면서도 유독 김씨 앞에선 무뎌지며 돌파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후 정권이 두 번 교체됐고, 그와 맞물려 뒤바뀐 여야는 이 사안에 대한 ‘공수 교대’를 하느라 분주했다.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이든 ‘우리 편’ 수사하는 검찰은 남의 편, ‘남의 편’ 수사하는 검찰은 우리 편으로 삼으려는 경향을 수학 공식처럼 되풀이했다. 결국 검찰은 의지와 무관하게 여야 한쪽으로부터 공격받을 수밖에 없기에 수사 대상이 살아 있는 권력이든 아니든, ‘제 식구’이든 아니든 간에 공정하게 수사함이 마땅하다. 검찰이 이 원칙을 김씨 의혹엔 엄정하게 적용하지 않은 탓에 유무죄를 가리는 단계까지 오는 데 우리 사회가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 사회적 갈등을 감수해야만 했다. 검찰도 뭔가 할 말이 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수사가 공정하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김씨 의혹에 번갈아 눈감아 온 여야의 무책임도 크게 한몫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때 되면 바통 터치하듯 번갈아가며 수사기관을 흔들어대는 막장 이어달리기를 지속해왔다. 그러면서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누가 누구를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싶다. 평소 ‘검찰개혁’을 강조했던 한 정치인은 막상 본인이 경찰 수사를 받아보니 검찰 보완수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