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말이 없다. 대신 흔적이 말한다. 게중 엉뚱한 자리에 있는 물건은 눈길을 붙잡는다. 왜 이것이 여기 있을까. 그 자리에 앉아 오래 바라보고, 쥐어 보고, 냄새도 맡아 본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내력을 아는 사람을 찾아 묻고 듣는다. 물건 뒤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연이 있다. 그 사연 속에 우리 시대의 모습이 있다. 사건에 가려 보이지 않던 풍경을 줍는다. 거기, 그것이 있었다. <편집자 주>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내린 20일 서울 중구 평화시장에 비닐 폐기물들이 쌓여 있다. 아래 사진은 한 상인이 오토바이에 비닐을 덮는 모습.
비가 내리자 평화시장이 비닐을 입었다. 매대 위 옷가지도, 수레에 실린 짐도, 골목의 공용 전화기도, 세워 둔 오토바이 안장도 비닐 한 겹씩을 걸쳤다. 서울 1962년 문을 연 시장이다. 60년 넘게 일해 온 골목에서 상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늘 하던 일이라는 듯 비닐을 덮었다. 이들에게 비닐은 비 오는 날 걸치는 한 겹 외투였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내린 20일 서울 중구 평화시장에서 상인들이 비닐을 덮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내린 20일 서울 중구 평화시장에서 식당 직원들이 음식이 담긴 쟁반을 머리에 이고 이동하고 있다.
점포마다 매대를 덮을 만큼의 비닐이 있다. 우비 차림의 오토바이 기사들은 큰 비닐을 싣고 다니다 적재물 위에 덮고 빗속을 달렸다. 음식을 나르는 식당 직원들은 랩으로 밀봉한 쟁반을 머리에 이고 빗길을 걸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내린 20일 서울 중구 평화시장 매대에 비닐이 덮여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내린 20일 서울 중구 평화시장에서 상인들이 짐에 비닐을 덮은 채 이동하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내린 20일 서울 중구 평화시장 매대에 비닐이 덮여 있다.
시장에서 일하는 김(71)씨는 “비 오는 날에는 한 번 일할 거를 두세 번 일하게 되니까 힘들다”며 “꺼내 놨던 물건을 비 맞지 않는 곳으로 옮겨야 하고, 그치면 다시 꺼내 놔야 하고, 비가 올락 말락 하는 날에는 진이 다 빠진다”고 말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내린 20일 서울 중구 평화시장 공용전화기에 비닐이 덮여 있다.
공용 전화기의 비닐은 비 오는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덮어 둔다고 했다. 오래 쓴 전화기가 젖을까 하는 우려였다.
전화기에 비닐을 덮어 둔 하(78)씨는 “점포마다 비닐을 많이 챙겨 두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해 왔기 때문에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안다”며 “떨어질 즈음이면 생필품 사듯이 쟁여 둔다”고 말했다.
비가 그치면 비닐은 걷힌다. 걷힌 자리에 물건이 다시 나온다. 비닐은 접혀 매대 아래로 들어간다. 퀘퀘묵은 냄새를 쌓으며 다음 비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