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금융 진출 60년… 다음 과제는 ‘내실 다지기’ [심층기획-글로벌 영토 넓히는 K-금융]

경쟁사 비해 규모 열악… ‘체급’ 키우고
단기 성과 위주 벗어나 장기전략 수립
국가별 다른 규제 환경 철저 대비해야

내년이면 국내 금융회사들이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린 지 60주년이 된다. 1967년 한국외환은행의 미국 지점 설치 등을 시작으로 국내 금융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전진·후퇴를 반복하며 괄목한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K금융’이 외형적 성장을 넘어 한 발 질적 내실화를 이루려면 단기 성과 위주에서 벗어나 장기 전략 추구, 대형화와 현지화, 이자수익 위주 사업모델 탈피 등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해외진출은 은행 중심에 이자수익·특정 지역 위주인 점이 한계로 꼽혀왔다. 삼정KPMG는 ‘금융사 해외진출 2.0 시대 리밸런싱 투트랙 전략’ 보고서에서 ‘K금융’의 해외 사업에 대해 “내실이 외형적 팽창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며 “해외진출은 여전히 은행 중심으로 이뤄지고 자본집약적인 대출 위주 사업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체 해외점포 중 은행업권의 비중이 43.8%에 달했다.

 

그러나 은행권 해외점포의 순이익 기여도는 여전히 미흡한 편이다. 2024년 기준 국내은행 순이익 중 해외점포 비중은 10.7%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 3대 은행인 미쓰비시UFJ금융그룹(MUFG), 스미토모미쓰이금융그룹(SMFG), 미즈호금융그룹이 2015년 평균 30% 수준이던 해외수익 비중을 2024년 50%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과 대비된다.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금융회사는 동일 지역·고객·업무의 성향 때문에 현지에서 국내 금융회사 간 서비스가 중복되는 모습”이라고 짚었다. 이는 곧 출혈경쟁으로 이어지기 쉽다.

대형화·현지화가 아직 미흡한 점도 주요 한계로 지적된다.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한국계 은행의 싱가포르 현지 지점들은 조직 규모 면에서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열악한 수준”이라며 “일본계 은행들은 법인이 아닌 지점임에도 싱가포르에 1500∼2000명씩 직원을 두고 있는 반면 국내은행들은 수십명대에 그친다”고 전했다. 규모가 작다 보니 투자금융(IB) 등 신사업으로 영역 확장이 쉽지 않다.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응우옌호앙옌 미래에셋증권 베트남 법인장은 “베트남 투자자의 행동과 수요는 한국과 여러 면에서 다르기에 현지 인재를 중심으로 강한 조직을 만들고 시장 특성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며, 고객과 파트너와의 신뢰 관계를 장기적으로 쌓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국가별로 다른 규제 환경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삼정KPMG는 “자금세탁방지(AML), 고객확인(KYC), 고객실사(CDD) 관련 규제가 세계적으로 강화되면서 해외점포의 컴플라이언스(법규 준수) 부담과 관련 비용 증가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 페네르고에 따르면 AML·KYC·CDD 등 규정 위반에 따른 글로벌 금융사의 벌금은 지난해 38억달러에 달한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의 국내 금융사 관계자는 “자본시장 구조가 취약한 나라일수록 해외 현지법인 진출 시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미국 지점에 근무하는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미국 금융당국은 자금 세탁이나 내부통제 미비에 대해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한다”며 “인공지능(AI) 투자 기법 도입에 있어서도 알고리즘 맹신 대신 인간이 모든 과정을 설명하고 통제할 것을 법적·실무적으로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에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수년간 사업을 위축시킬 만큼 강력한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한국 본사가 단기 성과에 매몰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해외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현지 주류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려면 네트워크 구축과 투자를 위한 긴 호흡이 필수적이지만, 국내 금융권 특유의 경영진 임기 제도로 인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끈기 있게 해외 사업을 끌고 가기 힘든 구조적 고충이 크다”고 토로했다.

미국에서 일하는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사업이 첫날부터 바로 되는 게 아니니 (위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대부분 금융 지주회사들은 회장 임기가 정해져 있어 자신의 임기에 계속 적자만 나는 사업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응우옌 법인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투자 의지”라며 “자본·기술·지배구조·브랜드 구축에 꾸준히 투자해야 하고 초기에는 수익성이 높지 않은 기간도 감내할 수 있는 재무적 체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외진출을 ‘수익 확대’ 수단으로만 보기보다 ‘동반 성장’의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베트남 지역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진출을 하면서 단순히 시장을 선점해 돈을 벌자는 자세보다 한국과 해당 지역 사이 금융 교두보 역할을 통해 양국 금융업의 상호발전을 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