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정부의 장기 연체채무 탕감 정책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에 “선진화된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도저히 빚을 갚을 여력이 없는 채무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게 국가 경제에도 이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고의적·악의적으로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를 철저히 걸러내겠다고 자신했지만, 성실상환자들과의 형평성 논란 등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 채무 탕감 정책이 금융의 기본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0일 청와대 유튜브 방송 ‘팩트방앗간’에 출연해 장기 연체채무 탕감에 대해 “포퓰리즘이나 관치금융, 특혜가 아니다”라며 “20년간 운영해온 제도의 공백을 메꾸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정부는 지난해 10월 배드뱅크 ‘새도약기금’을 출범시켰다. 새도약기금은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인 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해 채무자 상환능력에 따라 소각 또는 채무조정을 진행하는 제도다. 금융위는 새도약기금을 통해 사회취약계층 26만9000명 대상 2조3000억원 규모의 장기연체 채권을 소각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반복적인 채무 탕감이 상환능력이 있는 차주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성실히 빚을 갚아온 대다수 금융소비자에게 박탈감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촘촘한 제도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한계 상황에 내몰린 취약 차주의 채무조정을 돕는다는 정책 취지 자체에는 공감한다. 다만 소액 연체와 일반 연체를 묶어 무분별하게 탕감하면 심각한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며 “금액이나 연체 기간은 물론, 투자 실패 등 대출금의 사용 목적과 사유까지 촘촘하게 따져서 실행해야 무조건 돈을 빌리고 보자는 식의 제도 악용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 채무 탕감 정책이 금융의 기본원리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준영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이번 정책에 부정적인 이유는 도덕적 해이와 정보 비대칭성이라는 금융의 기본 속성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직접 드라이브를 걸기보다는 금융회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스스로 저신용자를 선별하고 금리 인하 등의 혜택을 주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