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대학 진학과 학교폭력 피해 구제를 좌우하는 학교 기록이 일선 교육 현장에서 무더기로 부실하게 작성·관리된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마다 달라야 할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수십, 수백 명에게 똑같이 써 대입 평가의 신뢰성과 변별력을 떨어뜨리고, 학교폭력 상담기록을 남기지 않아 피해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발생했다. 학생의 미래와 권리를 뒷받침해야 할 기록이 학교 현장의 무성의와 교육당국의 허술한 감독 속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 4년간(2021∼2024년) 서울 소재 239개 고등학교의 학생부 작성 실태를 점검한 결과, 교원 803명이 51명 이상 학생의 학생부에 같은 내용을 반복해 기재한 사례가 1106건에 달했다고 20일 밝혔다. 교육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세부특기사항과 종합의견 가운데 모든 문장이 동일한 경우만 추출한 결과여서 실제 중복 작성 규모는 더 클 수 있다.
유형별로는 한 문안을 같은 해 여러 학생에게 중복 기재한 사례가 637건으로 가장 많았다. 한 교사가 전년도 학생부에 쓴 문안을 다음 해 다른 학생에게 재활용한 사례가 39건이었고, 교육 내용이 다른 학년 학생들에게 같은 문안을 사용한 사례도 3건 확인됐다.
학생부 부실 작성이 장기간 반복됐지만 서울시교육청의 관리·감독도 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일부 학교는 복사·붙여넣기 사실이 적발돼 교육청의 수정 요구를 받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학생별 성취와 특성을 구분해야 할 학생부가 획일적으로 작성되면 대입 평가의 변별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록 관리에서도 같은 문제가 드러났다. 감사원이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가장 많은 강남서초·강서양천교육지원청 학폭위가 2023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심의한 155건을 표본 점검한 결과, 학교가 상담기록을 보관하지 않아 학폭위에 제출하지 못한 사례가 143건으로 전체의 92.2%에 달했다. 학폭위가 상담기록 제출을 요청했지만 기록 자체가 없어 증거 부족으로 학교폭력을 인정하지 못한 사례도 2건 발생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사가 학교폭력 상황에 적극 개입하고 상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과정은 기록물로 생산·관리돼야 한다. 학교폭력 사건은 물적 증거가 부족하고 피해·가해 학생의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의 최초 진술이 담긴 상담기록이 사실관계를 가리는 핵심 자료가 된다. 그런데도 2년 동안 학교폭력에 시달린 학생과 다섯 차례 상담하고도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은 교사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