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의감성엽서] 통영에서

통영에 오니 시내 여기저기, 구석구석 옛 문화예술의 숨결이 살아 있고,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어딜 가도 시가 있고, 그림이 있고, 음악이 있고, 그리고 푸른 바다와 산이 있다. 마치 ‘통영’이라는 한 권의 책을 펼쳐놓은 듯 이 페이지에선 김춘수 시인이, 저 페이지에선 박경리 작가가, 다른 페이지에선 전혁림 그림이, 또 다른 페이지에선 윤이상과 김상옥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유치환과 충무공이, 백석과 이중섭이 걸어 나온다.

사람들은 무심하면서도 친절하고, 거리는 깨끗한데도 인위적이지 않고, 김춘수 시인의 시구처럼 “바다는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음에도 바다색은 정말 아름답고, 온갖 새들을 품고 자연스레 울울창창 나이 든 나무들은 시원한 바람을 건네고, 무엇보다 제일 좋은 건 대도시에선 들을 수 없는 우렁찬 개구리의 함성을 실컷 들을 수 있다는 것.

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이틀에 한 번씩 숙소(전혁림미술관 근처)에서 15분가량 걸어서 봉평동 바닷가로 가 해저터널을 지나 중앙로 27번지에 있는 윤이상 기념관과 거리를 돌아보고, 동호동, 항남동 골목과 명정동 골목을 지나 충렬사 앞에 서 있는 백석 시비(통영의 여인 ‘란’을 짝사랑해 충렬사 계단에 앉아 그리움을 달래며 쓴 시_‘통영 2’)와 인사하고, 이중섭의 물고기를 탄 아이를 한 번 더 쓰다듬어주고는 강구안을 돌아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그 골목들은 아직도 옛 문화예술이 살아 있는 곳이라 마치 내가 옛사람이 되어 그곳을 걷는 듯한 아련한 정취를 준다. 오늘도 숙소에서 나와 통영국제음악당을 지나 수륙해수욕장까지 걸어갔다. 해수욕장은 항만이 아니어서 바다에 손발을 담글 수 있어 정말 좋다. 아쉬운 게 있다면 아직도 날씨 탓에 통영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보지 못했다는 것.

그래도 이곳에 와서 가장 보람찬 것은 오랜만에 김춘수 시인의 시를 다시 읽는 것. 봉평동 바닷가에 있는 ‘김춘수 유품전시관’. 그곳에서 오랜만에 김춘수 시인을 만나 어찌나 반갑던지! 생전에 뵌 모습 그대로 중절모를 쓰고, 나비넥타이를 매시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뵈니 괜히 그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2004년에 돌아가셨으니 어느덧 이십이 년이 지났다. 그토록 고향 통영 바다를 그리워하시더니, 이제는 이곳에 와 매일매일 바다를 보고 계시겠구나. 이곳에 걸려 있는 시인의 시 ‘명정리’를 읽고는 곧바로 명정 우물을 보러 갔다가 그 근처에서 박경리 선생의 99계단도 보고, 주옥같은 이중섭의 대표작이 탄생한 옛 나전칠기 기술양성소에도 가보고, 항남 오거리 쌈지공원 앞에 서 계신 김춘수 시인의 동상을 향해 깊게 묵례했다. 모두가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 하여 저절로 감개무량해지는 이 고즈넉하고 아름답고 정다운 소도시에서의 한 달살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가. 서울로 돌아갈 땐 분명 왔던 길이 아닌 새길을 찾게 될 거야. 그것도 코발트블루의 바다가 지척에 펼쳐져 있고, 통영이 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내 이름을 계속 불러주고 있으니….


김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