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세계 시장에서 K드라마의 가능성을 증명한 첫 장르는 ‘조선 좀비’ 사극이었다. 2019년 첫 공개 된 ‘킹덤’은 조선시대와 좀비라는 이질적 조합으로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고, 이는 넷플릭스의 대규모 한국 콘텐츠 투자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7년, 이번에는 좀비 대신 원귀(寃鬼)와 악귀가 조선 궁궐을 배회한다.
“궁은 왜 그 자리에 지어졌을까? 명당이라서 지었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욕망과 원한을 가장 자극하는 존재가 가장 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궁이 세워진 건 아닐까, 권소라·서재원 작가와 함께 상상해 봤죠.”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최정규 감독의 말이다.
두 사람은 귀신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왕실의 추악한 비밀과 마주한다. 원귀를 만들어낸 것은 결국 왕실 사람들의 권력을 향한 집착과 질투였다. 그렇기에 귀신을 퇴치하는 과정은 왕실이 감춰 온 죄와 업보를 파헤치는 과정이 된다. 자연히 작품은 오컬트와 미스터리, 궁중 정치극이 결합한 복합 장르로 전개된다.
‘동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귀의 세계를 구현하는 공간 연출이다. 귀의 세계는 현실과 같은 장소이지만 공간은 기울어져 있으며, 중력이 다르게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려한 시각효과에 의존하기보다 미술과 촬영으로 현실과 귀의 세계의 차이를 구현했다.
최 감독은 “가능한 한 실제 세트와 오브제를 먼저 제작한 뒤 VFX로 보정하고 변형했다”며 “같은 공간도 현실과 귀의 세계, 두 벌의 세트로 만들었다. 귀의 세계는 바닥과 기둥, 천장까지 의도적으로 기울이고 왜곡했다”고 설명했다.
현실과 이면세계를 오가는 설정은 글로벌 판타지 장르에서 익숙한 문법이다. ‘동궁’이 공개 직후부터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영화 ‘콘스탄틴’과 비교되는 이유다. 그러나 ‘동궁’은 이 문법을 한국 설화와 기담으로 다시 번역한다. 드라마 ‘손 the guest’, ‘불가살’을 집필한 권소라·서재원 작가가 구축한 세계관에는 귀매와 원귀, 몸주신, 복숭아나무, 벼락 맞은 나뭇가지, 양기와 음기 등 한국 설화와 민간신앙의 코드가 촘촘하게 녹아 있다. 서양 판타지의 악마나 괴물 대신 한과 원망이 응축된 존재들이 공포의 중심에 놓인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남주혁과 노윤서는 귀의 세계를 추적하는 버디로 극을 이끈다. 그러나 작품의 중심을 잡는 것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간악한 선택을 거듭하고, 이를 은폐하며 업보를 쌓아가는 왕과 대비(장영남)이다. 조승우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왕의 복잡한 내면을 뛰어난 강약조절로 표현했고, 장영남은 권력욕과 질투가 광기로 빛나는 대비를 강렬하게 그려냈다. 두 배우의 대립은 궁중에 감도는 불안과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최 감독은 조승우를 “(연출자에게)꿈 같은 배우”라고 표현했다. 이어 “해석하기도, 연기하기도 정말 어려운 캐릭터였다”며 “배우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장영남에 대해서는 “대비는 분량은 많지 않지만 작품의 모멘텀을 붙잡아가는 캐릭터”라며 “이 인물의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 극도로 높은 에너지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최 감독은 MBC ‘마의’, ‘화정’, ‘옥중화’ 등 정통 사극을 만든 경험이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경복궁을 비롯해 경주 옥산서원, 전주 경기전, 남원 광한루원 등을 오가며 조선의 공간을 화면에 담았다. 그는 “한국의 궁궐과 오래된 공간,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귀여운 외모로 화제를 모으는 귀매 ‘꺼먹살이’ 역시 한국적 이미지를 담았다. 그는 “이름처럼 어두운 색을 기본으로 하되 석상이나 흙인형 같은 토속적이면서도 한국적인 느낌을 질감에 살렸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작가님들이 짠 세계관이 워낙 촘촘하고 정밀하다”며 “이를 어떻게 다 표현할까가 연출자로서 숙제였다”고 말했다. 작품은 시즌2에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의 여운도 남기며 마무리된다. 시즌2 가능성을 묻자 그는 “이번 작품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었기에 시즌2에 보여줄 것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남겨 놓은 것은 없다”면서도 “(시즌2 제의가 온다면) 너무 감사한 일”이라며 웃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