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무장 세력 후티 반군의 해상봉쇄 위협에 맞서 홍해를 지나는 선박 보호에 나섰다.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운이 호르무즈해협을 넘어 홍해로 확대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사우디 국영 SPA통신에 따르면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 연합군의 대변인 투르키 알말키 소장은 이날 “합동사령부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인도법과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부합하는 모든 단호하고 결연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대상으로 한 후티의 모든 위협은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행위이자 해적행위에 해당하므로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우디 외무부도 성명에서 “테러리스트 조직인 후티 민병대의 소위 군 대변인이 사우디에 대한 해상봉쇄를 선언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후티는 전날 “범죄 국가인 사우디 적들을 상대로 해상봉쇄를 선언하며, 이는 즉각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후티는 다수의 글로벌 해운사에 보낸 이메일에서도 “사우디의 모든 항구에서 선박의 화물 선적 및 하역을 금지한다”며 “나아가 예멘군의 작전 반경 내 어느 위치에서든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후티가 가로막으려는 곳은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잇는 바브엘만데브해협이다. 사우디가 자신들의 통제하에 있는 예멘 사나 공항을 폭격하고 항만을 봉쇄한 데 대한 보복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중동의 양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과 바브엘만데브해협 2곳을 막겠다는 이란의 군사적 전략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후티가 바브엘만데브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공격할 경우 미국 또는 걸프 동맹국의 보복 공격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 중동의 전선이 확장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전세계 에너지 수급도 불안해진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은 세계 원유 운송의 약 7%를 차지한다. 이란 전쟁 전만 해도 세계 원유 물동량의 3% 수준이었지만,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해협이 차단되자 사우디가 육상 송유관을 통해 서쪽의 얀부항으로 보낸 뒤 홍해를 통해 수출하는 물량을 늘렸다. 해운 데이터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지난달 이 해협을 통과한 석유류 물동량은 하루 740만배럴이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이 막히면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국가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대만계 매체 빅고 파이낸스는 “한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54%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며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가 동시에 봉쇄될 경우, 사우디·이라크·카타르산 원유 등 (한국) 전체 수입의 33%가 직접적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이란은 열흘째 공방을 이어갔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미 동부시간으로 20일 오후 4시부터 약 5시간 이란의 군사시설 등을 타격했다. 이란도 쿠웨이트, 바레인 등에 보복 공격을 가했다.
전면전 재개 위험이 커지고, 중동 국가들까지 휘말릴 상황에 처하면서 중재국들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카타르와 이집트 등 중재국은 10일간 휴전과 함께 호르무즈해협 항행 제한을 해제하는 방안을 양국에 제안했다. 이란 내무부장관은 21일 파키스탄을 방문해 관리들과 회담했다.
다만 미국과 이란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좁힐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이란에 진지한 협상 의지가 없다며 호르무즈 연안의 군사시설 폭격과 해상봉쇄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최근 요르단과 이란에 배치된 미군 병력이 이란의 공습으로 전사하면서 강경한 입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도 초강경파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의사 결정권을 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중재국들의 중재 노력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협상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도 “지금 이란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며 “국가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