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여고생 이채원양을 살해한 장윤기 사건을 지휘하면서 세 차례에 걸쳐 장윤기의 베트남 여성 성폭행 사건과 병합해 처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장윤기 살인사건을 맡았던 전 전남광주 광산경찰서 형사과장 박모씨는 21일 “국수본이 베트남 여성 사건과 여고생 살인사건을 병합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장윤기 사건의 초동수사 부실과 유착 의혹 등이 불거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광주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다.
박씨 변호인은 박씨가 단순히 일반 살인혐의로만 사건을 검찰에 넘긴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박씨가 강간 등 살인혐의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는 영장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국수본의 병합 불허지시가 있었지만 강간 등 살인 가능성을 검토한 내용을 검찰 송치기록에 남겼다”고 전했다. 국수본의 지침에 따라 광산경찰서는 장윤기가 성폭행한 베트남 여성 사건은 여성청소년과에서 여고생 살인사건과 별도로 수사했다.
박씨 주장과 달리 장윤기 사건에 참여한 광산서 일부 경찰관들은 사건 초기부터 국수본 의견이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증언했다. 또 장윤기에게 강간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일선 수사팀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배경에는 국수본 지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살인사건 송치기간 내 피해자가 다른 성폭력 사건을 입증해 한꺼번에 송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수사의 완결성을 확보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은 여성청소년과에서 수사하되 살인사건 수사서류에 (외국인) 성폭행 관련 수사기록을 첨부하도록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국수본이 강간 살인으로 수사하겠다는 병합 요청을 막았다는 광산서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런 것은 없다”고 부인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국수본 셀프수사 우려에 대해서도 “관련한 부분을 차단하기 위해 광주청에서도 형사를 제외했고 확대되면서도 (국수본) 형사국 사람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은 이 같은 국수본의 부당한 지휘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이날 동시에 국수본 강력계 등을 압수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