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압·간첩 조작 등 167명 정부 포상 취소

12·12 가담 등 198점 취소안 의결
고문 경찰 이근안·박처원 포함
李 “오래 누적된 왜곡 잘 정리”

정부가 1980년대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전 경감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를 주도한 박처원 전 치안감,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 진압 작전을 지휘한 소준열 전투병과 교육사령관 등 국가폭력에 가담한 167명에게 수여된 정부포상 198점을 취소했다.

 

이인구 국방부 인사기획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부적절한 정부포상 취소 관련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는 21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서훈 취소(안)이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행안부에 따르면 이번에 취소 대상에는 12·12 군사반란과 5·18민주화운동 진압에 가담하거나 계엄업무에 관여한 76명이 1980∼1981년 받은 무공훈장·포장 76점이 포함됐다. 아울러 1960~1990년대 간첩조작사건 관련자 91명이 받은 훈·포장 36점과 대통령표창·국무총리표창 86점도 취소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비공개회의에서 행안부가 보고한 서훈취소안과 관련해 “오랫동안 누적된 왜곡을 잘 정리했다”고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 대통령이 취소 대상자들이 추가로 더 있을 수 있는지 묻자 윤호중 행안부 장관이 “조사를 하고 있고 더 살펴볼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잘못되거나 반론에 부딪히지 않게 꼼꼼하게 파악해 잘 다뤄달라”고 당부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방부는 76명 가운데 ‘국가안전보장 유공’으로 서훈을 받은 42명의 근무경력과 당시 대간첩작전기록 등을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무공훈장 요건인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과 무공포장 요건인 ‘국토방위에 헌신·노력’한 공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 ‘계엄업무 유공’으로 서훈을 받은 나머지 34명에 대해서는 해당 업무가 ‘국헌문란 및 내란행위’로 사법적 판단이 확정된 만큼 서훈 취소 사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 중에는 1980년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을 납치하며 12·12의 서막을 연 하나회 소속 우경윤 전 준장 등 신군부 일당이 대거 포함됐다. 5·18 당시 전투병과 교육사령관으로 시위대 진압 작전을 지휘한 소준열 전 육군본부 교육사령관 포상도 취소됐다.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소속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체포를 주도한 오일랑 전 청와대 경호실 안전처장도 포함됐다.

 

경찰청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검거 사건’을 비롯해 삼척고정간첩단사건, 서울대무림사건, 함주명 간첩사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사건 관련 포상을 취소했다.

 

대상자는 모두 20명으로 대표적인 인물이 이 전 경감과 박 전 치안감이다. 이 전 경감은 1970~19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근무하며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민주화운동 인사들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가해 ‘고문기술자’로 불렸다.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의 최종 책임자였던 박 전 치안감은 1987년 박종철 열사가 경찰 조사 중 고문으로 숨진 사건을 축소·은폐한 핵심 인물이다. 당시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해 거센 공분을 샀다.

 

국정원은 수사절차 위반과 인권침해가 확인된 재일동포 간첩사건, 제주 모녀 간첩사건 등 19개 사건과 관련된 71명에 대한 정부 포상을 행안부에 취소 요청했다. 다만 재일동포 간첩사건을 지휘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당시 공안수사국장)은 상훈 취소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행안부는 이번 포상 취소를 위해 상훈기록과 국무회의 기록 등을 국방부와 경찰청, 국정원에 제공했다. 각 기관은 거짓공적 등 취소 사유를 검토하고 당사자 사전 통지와 공적심사위원회 심의 등의 절차를 밟았다.

 

정부가 부적절한 정부포상을 취소한 것은 올해 들어 세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