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에게 또래 친구가 있었다면 마지막 하루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비극적인 삶을 이 같은 상상으로 풀어낸 장편희곡 ‘나는 왕이 아니었다’가 출간됐다. 단종이 생을 마감한 강원도 영월 관풍헌을 무대로, 역사 속 왕이 아닌 열일곱 살 소년 단종의 마지막 하루를 무대 위에 되살린 작품이다.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 ‘민둥산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서예일 작가는 자신의 청소년 장편소설 ‘나는 왕이 아니었다’를 희곡으로 새롭게 펴냈다고 22일 밝혔다.
희곡은 매년 단종문화제가 열리는 영월 관풍헌을 배경으로 한다. 단종이 유배와 죽음을 맞은 역사적 공간을 단순한 비극의 현장이 아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무대로 재해석했다.
원작 소설이 현대의 12세 소년이 과거로 들어가 단종의 삶을 체험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였다면, 희곡은 과감한 압축을 선택했다. 현대의 17세 소년이 죽음 이후 열일곱 살 단종을 만나 마지막 하루를 함께한다는 설정을 통해 역사적 사건보다 한 인간의 고독과 우정을 조명한다.
무대 장치에도 상징성을 담았다. 단종문화제에서 단종 역할을 맡은 현대 소년은 곤룡포를 입고 있지만 왕이 아니며, 진짜 왕인 단종(홍위)은 평복 차림으로 등장한다. ‘왕의 옷을 입은 가짜 왕’과 ‘평범한 옷을 입은 진짜 왕’의 대비는 권력보다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현대 소년은 단종에게만 보이는 존재다. 금부도사와 주변 인물들은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단종과 관객만이 함께한다.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이 설정은 죽음을 앞둔 열일곱 살 소년의 외로움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서 작가는 “이 작품은 단종의 죽음을 이야기하기보다 영월에서 마지막 생을 보낸 열일곱 살 소년을 기억하기 위해 썼다”며 “관객들이 공연장을 나설 때 ‘17세 소년 단종’을 오래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희곡 출간을 계기로 연극과 무용극 등 공연 제작도 추진되고 있다. 특히 내년 춘천에서 1990년 제8회 전국연극제(현 대한민국연극제) 이후 37년 만에 대한민국연극제가 열릴 예정이어서 강원도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창작희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전망이다.
서 작가가 앞서 발표한 정선아리랑을 소재로 한 희곡 ‘노포’는 영월의 단종 이야기를 무대예술로 재해석한 ‘나는 왕이 아니었다’와 함께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현대적 공연 콘텐츠로 확장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