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현존 최강 바둑 인공지능(AI) 카타고(KataGo)를 꺾고 상금 2억5000만원과 제네시스 G90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우승 직후 가장 화제가 된 건 승리보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는 그의 뜻밖의 한마디였다.
신 9단은 21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최종 3국에서 카타고를 상대로 221수 만에 흑 11집 반승을 거뒀다. 1국 패배 뒤 2·3국을 내리 잡아내며 최종 전적 2승1패로 시리즈를 뒤집었다.
이번 승리로 신 9단은 대국료와 승리수당을 포함해 총 2억5000만원의 상금을 받았고, 2승 달성 부상으로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도 함께 받게 됐다.
하지만 시상식의 주인공은 상금도, 자동차도 아니었다. 신 9단은 부상으로 받은 G90에 대해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며 “차는 차차 생각해 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세계 최강 AI를 꺾고 최고급 세단의 주인이 됐지만, 정작 운전대를 잡기 위해서는 면허부터 취득해야 하는 셈이다.
이번 대결은 인간과 AI의 기력 차를 고려해 신 9단이 흑돌 두 점을 먼저 놓는 접바둑으로 진행됐다. 두 점을 먼저 놓는 것은 사실상 18집 반의 우위를 안고 시작하는 조건이지만, 현존 최고 성능 AI인 카타고를 상대로는 세계 정상급 기사들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핸디캡이다. 바둑계에서도 신 9단이 한 판만 이겨도 성공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카타고는 앞선 두 대국과 달리 첫수로 좌상귀 소목을 선택하며 변화를 줬다. 신 9단은 2분 넘게 장고한 끝에 우하귀 소목으로 응수했고, 이후 좌하귀 날일자로 실리를 챙기며 차분하게 판을 짜기 시작했다.
승부의 핵심은 화려한 전투가 아니라 ‘참는 바둑’이었다. 신 9단은 대회를 앞두고 “최대한 전투를 피하고 집으로 승부하겠다”고 밝힌 계획대로 중반까지 무리한 싸움을 자제했다. 우상 접전에서도 다소 손해를 감수하며 변수를 최소화했고, 80수 무렵 상변부터 중앙까지 거대한 흑진을 구축하며 승기를 잡았다.
앞선 두 대국에서는 승률 99% 우세를 잡고도 형세가 흔들린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신 9단은 여러 차례 계가를 거듭하며 우세를 확인했고, 끝까지 승률 99%를 유지한 채 11집 반 차 완승으로 대국을 마무리했다.
대국을 해설한 박정상 9단은 “신 9단이 오늘은 퍼펙트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특히 우상 접전에서 다소 손해인 것을 인지하고도 변수를 줄이는 맞춤 전략을 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AI를 상대로는 복잡한 전투보다 변수를 통제하는 선택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승리는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10년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인간과 AI의 넘기 어려운 격차를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한 인간이 AI를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맞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한 판이었다.
이번 대회는 신 9단에게 제한시간 5시간과 30초 초읽기 1회가 주어진 반면 카타고는 시간 제한 없이 매 수 20초 안에 착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카타고는 타이젬이 RTX 3090 그래픽카드 4장을 병렬 연결한 전용 시스템으로 구동됐으며, AI가 선택한 수는 한국기원 소속 이단비 초단이 대신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