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한국 축구 대개혁을 위해 출범한 K-축구 혁신위원회의 첫 회의가 열렸다. 주무 부처 장관 자격으로 ‘레전드’ 박지성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첫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공동위원장직을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에게 넘겼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치적 중립’이라는 원칙 아래 축구에 대한 정치권이나 정부의 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기에 정부 주도로 출범한 혁신위원회가 자칫 정부 개입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FIFA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최 장관의 걱정은 ‘기우’였던 것 같다. FIFA의 수장인 잔니 인판티노(스위스) 회장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정치권에 굽신거리며 기회주의자의 전형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그야말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인판티노 회장의 ‘환장의 콜라보’로 점철된 대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차장
지난해 12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조 추첨식이 ‘검은 유착’의 예고편이었다. 인판티노는 ‘FIFA 평화상’이란 듣도 보도 못한 상을 만들어 트럼프에게 수여했다. 일개 스포츠 연맹에 불과한 FIFA가 평화상을 만들 명분도 없는데 말이다. 축구계에서는 2025 노벨평화상 수상에 실패한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 우스운 건 FIFA 평화상의 잉크가 다 마르기도 전에 트럼프는 베네수엘라를 공습했고, 동맹국 이스라엘과 함께 선전포고도 없이 이란을 선제 타격했다.
미국에서 조별리그 3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이란 대표팀에 대해 미국 정부가 베이스캠프도 미국에 차리지 못하게 하고, ‘경기 24시간 이내 입국 및 종료 직후 멕시코 복귀’라는 황당한 조치를 내릴 때도 인판티노와 FIFA는 눈치만 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함)의 전형이었다.
압권은 미국 대표팀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AS모나코)의 징계 유예 조치였다. 발로건은 지난 2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32강전에서 상대 선수의 발목을 밟아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축구에서 레드카드를 받으면 최소 1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기에 발로건은 6일 열린 벨기에와의 16강전 출전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FIFA는 16강전을 하루 앞두고 발로건의 징계를 1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가 인판티노에게 전화를 걸어 징계 유예를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발로건의 징계 유예를 지켜본 잉글랜드도 16강전에서 레드카드를 받고 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수비수 자렐 콴사(레버쿠젠)에 대한 조치도 유예해 달라고 했으나 FIFA는 기각했다.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해선 너무나 관대하고, 나머지 국가에겐 엄격한 FIFA의 우스운 꼴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FIFA의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에도 인판티노는 기고만장한 모습이다. 48개국 체제로 확대된 북중미 월드컵이 역대 최고 수익을 냈기 때문이다. 2030 월드컵에는 아예 본선 진출국을 64개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최대 시장인 중국과 인도를 어떻게든 본선 무대에 끌어들이려는 ‘돈미새’(돈에 미친 새X) 행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에도 인판티노는 내년으로 예정된 회장 선거에서 무난히 4선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인판티노 치하의 FIFA가 점점 더 상업화의 길로 빠져들수록 축구는 점점 순수성과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