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시스템과 자본주의라는 경제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성장을 못 하니까 민주주의도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 바퀴가 옛날처럼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성장정책으로 회귀해야 한다”며 “성장이 돼야 분배문제도 해결할 여유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SK그룹을 이끌며 ‘재계 맏형’ 역할을 해온 최 회장이 이처럼 쓴소리를 마다치 않은 속내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대기업이 최근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올리자 고용노동부는 “사회적으로 재분배할 방법을 찾자”며 관련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 14일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이익’에 특별세를 부과해 연구·개발(RD) 투자, 청년 채용, 근로자 복지 향상 등에 써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세율이 가장 높은 수준(25%)인 법인세를 꼬박꼬박 내온 재계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초과이익이 ‘초과세수’를 뜻하는 것인지 개념조차 불분명하다. 최 회장은 간담회에서 “성장이 필요하다면서도 성장하는 기업을 도와주는 제도는 많지 않다”며 “우리 제도는 작은 기업은 좋아져야 하고 가난하면 뭔가 줘야 하고 부자는 증세해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성장의 파이를 키우기보다 어떻게 나눠 가질까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부를 못마땅해 하는 이가 최 회장뿐일까.
정부는 성장전략으로 2030년까지 ‘잠재성장률 3%, 수출 4강,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를 달성한다는 ‘3·4·5 비전’을 제시했으나 그리 미덥지 못하다. 특히 올해를 잠재성장률 반등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4~5%에 달했던 잠재성장률은 저출생·고령화 가속화와 혁신 실종에 1%대 중반까지 떨어진 상태다. 정부는 반도체 클러스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와 지역 균형발전에 총 4755조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성장잠재력을 키우겠다고 하는데, 전력과 용수, 인력 등 각론으로 들어가면 실현 가능성엔 의심이 든다.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착시에 빠진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