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어폰 없이 동영상 시청 ‘소음빌런’… 상반기 지하철 민원 접수만 7520건

이어폰 착용 권고 불구
열차 내 소음 관련 민원
2026년 상반기 7520건 달해

“정치·종교 신념 등 노출
의도적 혐오 행위 우려”
처벌 규정에도 단속 한계

직장인 이모(34)씨는 최근 퇴근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옆자리에 앉은 고령의 남성이 이어폰도 없이 정치 유튜브 방송을 틀어놓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자기 딴에는 눈치가 보여서 그런지 소리를 작게 틀었는데 오히려 들릴 듯 말 듯한 소음이 더 짜증 난다”며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괜히 싸움이 날까 봐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토로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열차 내 소음 관련 민원 접수 건수는 7520건에 달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최근 지하철이나 공원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이어폰 없이 영상이나 음악을 틀어놓는 이른바 ‘소음 공해족’에 대한 시민 불만이 커지고 있다.

22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열차 내 소음(유튜브·라디오 등) 관련 민원 접수 건수는 7520건에 달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전체 민원 건수는 지난해(1만1354건) 기록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공사 측이 ‘지하철 내 이어폰 착용’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음에도 소음 민원은 2022년 8049건, 2023년 8729건, 지난해 1만건 돌파 등 최근 들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시민들은 공공장소에서의 이 같은 행위를 심각한 소음 공해이자 ‘시민의식 실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일이라서다. 소음 공해는 대중교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직장인 최모(36)씨는 “집 근처 공원에서 러닝을 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찬송가를 크게 틀어놓고 산책하는 노부부를 마주친다”며 “본인들은 좋을지 몰라도 조용히 운동하거나 산책하는 이들에게는 심각한 민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공공장소에서 소음을 유발하는 행위 뒤에 ‘양극화 문제’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단순히 배려심 부족을 넘어, 특정 정치·종교 성향을 대놓고 노출하며 타인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려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에티켓을 몰라서 그런 분들도 있겠지만 의도적인 ‘혐오’도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정치나 종교가 민감한 이슈라 감추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대놓고 ‘나는 옳은데 너희들은 왜 그러지 않느냐’며 타인에게 강요하는 형태로 비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또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갈등 분위기가 더 심화하는 것 같은데 사회 지도층이 서로에 대한 적대화를 멈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행법상 공공장소에서의 소음 유발 행위는 명백한 처벌 대상이다.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료에 처해질 수 있으며, 각 지하철공사의 여객운송약관 역시 ‘여객에게 불쾌감을 주는 소란 행위’ 시 퇴거 조치를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현장 단속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데다, 신고를 받고 단속반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 피신고자가 내리거나 음량을 줄여버리면 현장 적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 조항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