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진격 늦춰라”… 국경에 ‘마지노선’ 쌓는 폴란드

대전차 장애물, 전투 진지 등으로 국경 요새화
2차대전 때 적국 독일이 공병 보내 적극 지원
“독일과 안보 협력 필수” vs “獨에 지배당해”

러시아가 유럽 안보를 위협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인접한 폴란드가 국경에 튼튼한 방벽을 쌓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와 싸운 독일이 군대까지 보내 이 작업을 돕고 나섰다. 폴란드와 독일은 나란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다.

폴란드 동부 국경선 부근에서 폴란드군와 독일군 장병들이 의기투합해 대전차 방벽 등 요새를 건설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군이 폴란드를 공격하는 경우 그 기갑 부대 등의 진군을 지연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 SNS 캡처

22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폴란드군은 250㎞에 달하는 동부 및 북부 국경에 연말까지 콘크리트 요새를 만들고, 여기에 적의 동향을 살피는 전자 감시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폴란드는 동쪽으로 벨라루스, 북쪽으로는 러시아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 각각 접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맹방으로 러시아군의 미사일 등이 배치돼 있어 폴란드 입장에선 사실상 러시아와 맞닿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폴란드가 수십억 달러를 써 가며 건설 중인 이 국경 요새는 ‘동쪽의 방패’(Eastern Shield)로 불린다. 요새는 적 탱크의 진군을 가로막는 장벽과 도랑 등 대전차 장애물 그리고 보병들이 지키는 전투 진지, 무기고·탄약고 등 각종 보급품 창고로 구성된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30년대 프랑스가 독일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국경선 부근에 조성한 이른바 ‘마지노선’을 연상케 한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웃 나라 독일이 육군 전투 공병 부대를 보내 폴란드군의 국경 요새 구축을 돕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군은 성명에서 “이 사업의 목적은 군사 충돌 시 적국 군대의 침공을 지연시켜 폴란드군과 나토의 대응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과의 밀착을 추구하는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폴란드 군인들과 독일 군인들이 폴란드·러시아 국경을 공동으로 강화하고 있다”며 “이런 일은 투스크 정부에서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왼쪽)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SNS 캡처

폴란드와 독일은 역사적으로 지독한 ‘악연’이다. 독일은 과거 프로이센 왕국 시절 러시아 및 오스트리아 제국과 함께 폴란드 땅을 나눠 가진 전력이 있다. 2차대전은 1939년 9월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했으며, 독일 점령 하에서 폴란드는 유대인을 비롯해 엄청난 숫자의 주민이 희생됐다. 오늘날 폴란드는 이처럼 어두운 과거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독일에 거액의 배상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점점 커지는 러시아군의 위협에 직면한 폴란드로선 독일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폴란드 안보에서 나토와 EU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해 온 투스크 총리는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을 최소화하며 독일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야당인 법과정의당(PiS)은 “투스크는 베를린 정부의 통제를 받는 꼭두각시”라고 비난하며 폴란드 국민의 반(反)독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카롤 나브로츠키 현 폴란드 대통령의 경우 당적은 없으나 대선 과정에서 PiS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역사학자 출신인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대표적 민족주의자로 독일에 대한 반감이 투스크 총리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