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 1월 한 북한배경학생이 인터뷰 끄트머리에 물어왔다. 통일은 돼야 하지 않겠냐고 가볍게 답했다. 그러자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돌아왔다. “북한에 외할머니와 이모가 있어서 전 통일이 꼭 됐으면 좋겠어요. 다시 만나고 싶어요.” 거창한 통일 담론보다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분단과 이주의 과정에서 가족과 떨어진 그 학생에게 통일은 안부를 묻기 위한 통로였다. 북한배경학생들이 살아가는 ‘경계’를 처음 실감했다. 그때부터 북한배경학생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지난 13∼15일 세 차례 내보낸 ‘경계에 선 아이들, 북한배경학생’ 기획의 출발점이었다. 한 학생의 솔직한 말에서 시작했지만, 취재가 깊어질수록 더 자주 마주친 것은 자신의 배경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선택을 설명하는 말은 ‘굳이’였다. 남북하나재단의 2024년 탈북청소년 실태조사에서 북한배경을 ‘밝히지 않는 편’이라는 응답은 62.4%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유는 예상과 달랐다. ‘차별 대우를 받을까 봐’(15.2%)라는 응답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굳이 밝힐 필요가 없어서’(63.4%)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굳이’는 현장에서 학교의 주저함으로 되풀이됐다. 북한배경학생, 그중에서도 학생 당사자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관련 기관에 전화를 돌리고 학교를 직접 찾아가 기사 취지를 설명했지만, 일부 학교와 기관 관계자들은 인터뷰 이후 학생들에게 돌아갈 시선과 반응부터 걱정했다. 한 대안학교 교사는 “과거 언론에 나섰다가 아이들이 비난받은 경험이 있어 조심스럽다”며 학생을 인터뷰에 내보내기를 꺼렸다. 지난 1월 시작한 취재가 기사로 나가기까지 반년 가까이 걸린 이유도 취재원 한 명을 만나는 것부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통해 학생이 얻을 것은 분명하지 않은데, 공개 이후 감당할 오해와 비난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학생들이 자신의 출신을 밝히지 않는 선택을 한 것도 이와 맞닿아 있었다. 중국에서 왔다고 말했다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까 걱정하는 학생, 어머니가 북한 출신이라고 밝혔다가 따돌림당한 또래를 본 뒤 가족 배경을 숨긴 학생. 두 학생 모두 이를 대단한 결심처럼 말하지 않았다. 한 명은 중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잘 꺼내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학교 친구들에게 가족 배경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둘 다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는 취지였다.
처음에는 차별이나 편견보다 ‘굳이’가 앞선 조사 결과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신윤정 서울대 교수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 말의 무게가 달리 보였다. 그는 배경을 말해도 이해받기보다 가족사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낯선 질문을 감당해야 한다면,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선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사회가 북한배경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내린 선택인 만큼 큰 틀에서는 차별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었다.
낯선 사람에게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경상도 출신인데 이름은 왜 ‘민주’냐는 농담도 웃어넘겼다. 출신지가 나를 해명하게 만들거나 관계를 바꿀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출신지를 말한 뒤 상대의 시선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을 계산해 본 적이 없었다. 말해도 안전한 다수자의 감각이었던 셈이다.
북한배경학생들에게 당당하게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말하지 않을 자유를 존중하되, 말하고 싶을 때는 오해와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고 선뜻, 거리낌없이, 기꺼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먼저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