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홍대 간다던 57세 아내… 남편도 몰랐던 ‘반전 정체’ [요즘으른들]

50세가 막내인 연남동 힙합반
서태지에 열광했던 ‘첫 힙합 세대’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그만두면 되죠”
세계일보 신규 유튜브 코너 <요즘으른들>은 ‘나이답게’라는 고정관념을 깬 중장년층의 현재 진행형 이야기를 담는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배움과 자격증 도전부터 취미·문화·여행까지 인생 2막을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가는 요즘 어른들의 삶을 조명한다.

 

홍대 거리에서 시니어 힙합 수강생들이 강사 양진경씨와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 릴스를 촬영하고 있다. 양진경 제공

 

아내가 수상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홍대에 간다고 했다. 무엇을 하는지는 좀처럼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휴대전화 속 영상 하나를 남편에게 슬쩍 내밀었다.

 

화면 속 아내는 춤을 추고 있었다. 브루스도, 라인댄스도 아니었다. 헐렁한 옷을 입고 음악의 박자를 쪼개며 추는 ‘힙합’이었다.

 

50세가 막내…홍대에 모인 ‘비밀 힙합러’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댄스 연습실. 가수 비의 신곡 ‘너야’가 흘러나오자 거울 앞에 선 수강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까딱였다.

 

손은 박자를 쪼갰고, 어깨는 리듬을 탔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에 팔과 다리가 따로 움직이기도 했지만, 음악이 다시 시작되면 누구 하나 주저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이곳에서는 50세가 막내다. 몸치라며 망설였던 사람도, ‘이 나이에 무슨 춤이냐’는 생각에 연습실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던 사람도 이제는 함께 무대에 선다.

 

수강생 권재희(57)씨도 처음에는 자신이 춤추는 영상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쑥스럽고 민망해 영상을 찍고도 곧바로 화면을 껐다.

 

하지만 힙합을 배우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지금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매주 5개씩 릴스 영상을 올린다.

 

“‘누가 나를 알아보겠어’ 하면서 올리는 거죠.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요.”

 

권재희씨(가운데)가 힙합 댄스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리원 기자

 

영상이 하나둘 쌓이자 친구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춤도 찍어달라”, “나도 같이 배우고 싶다”는 연락이 줄을 잇는다. 

 

“우리 나이에는 목표가 없잖아요”

 

이들에게 힙합은 단순히 땀을 흘리는 취미가 아니다. 권씨는 말했다. “우리 나이에는 목표가 없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계속 목표를 만들어주세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돼요.”

 

힘든 시기를 지나며 얼굴에 그늘이 졌었다는 그는 요즘 주변에서 “많이 밝아졌다”, “웃음이 늘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처음에는 춤을 추면서 웃는 것조차 어려웠다. 동작을 따라가는 데만 급급해 표정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음악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온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수강생 권정인(50)씨가 말을 보탰다.

 

“젊은 사람들이 보면 주책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근데 저 고등학교 때 서태지가 나왔거든요. 첫 힙합 세대예요.”

 

따지고 보면 힙합과 댄스 음악에 처음 열광했던 세대가 지금의 5060이다. 이들에게 힙합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도, 뒤늦게 접한 낯선 문화도 아니다. 잠시 잊고 살았던 젊은 날의 음악에 가깝다.

 

인플루언서 양진경씨(가운데)가 시니어 수강생들과 함께 힙합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리원 기자

 

댓글에서 시작된 5060 힙합 수업

 

이들의 스승은 30대 인플루언서 양진경씨다. 팔로워 1만명이 넘는 SNS에 파티와 힙합 문화를 즐기는 일상을 공유해온, 이른바 ‘잘 노는 법’을 아는 요즘 세대다.

 

그런데 양씨가 올린 영상을 본 5060세대가 “배워보고 싶다”는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고, 그 댓글이 실제 수업 신청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함께 춤을 배우는 것을 넘어 홍대에서 파티를 즐기고, 거리에서 릴스도 촬영한다.

 

왜 시니어들과 함께 춤을 추게 됐을까. 양씨는 이렇게 답했다. “60대도 얼마든지 즐기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이잖아요. 저희랑 같이 춤도 추고, 파티 문화도 경험해보셨으면 해서 시작했어요.”

 

세대는 달랐지만 음악이 시작되자 경계는 사라졌다. 강사와 수강생이 아니라, 같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한 팀이 됐다.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그만두면 되죠”

 

‘이 나이에 무슨 힙합이냐’며 망설이는 이들에게 권재희씨가 남긴 말은 이랬다.

 

“5060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해봐서 못하는 거예요. 아기 때도 해보고 안 되면 때려치웠잖아요. 우리도 해보고 안 되면 때려치우면 되죠. 근데 이거, 완전 재밌어요.”

 

이들이 홍대에서 되찾은 것은 젊음 자체가 아니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된다는 자신감과 다음 주를 기다리게 만드는 작은 목표였다.

 

쉰을 넘긴 ‘으른’들의 유쾌한 힙합 도전기는 세계일보 유튜브 콘텐츠 <요즘으른들> 5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