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나’를 찾는 실험, 영덕 나옹왕사 선명상치유센터 [종교현장을 찾아서]

지난 22일 경북 영덕에서 문을 연 ‘나옹왕사 선명상치유센터’를 찾았다. 산문 깊숙이 머물던 수행의 전통을 오늘의 삶 속으로 불러내어, 지친 현대인에게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을 돌아볼 자리를 내어주는 곳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이곳에서 시작한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 사회적 실험이 궁금했다.

영덕 나옹왕사 선명상치유센터 현판식 장면. 나옹왕사 선명상센터 제공

조계종 선명상중앙본부는 영덕군이 창수면에 조성한 나옹왕사 역사문화체험지구의 위탁 운영을 맡아 올해 5월부터 센터 개원을 준비해 왔다. 이곳은 불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타종교인과 일반인에게도 문을 열어 참선과 명상, 자연과 역사문화가 어우러진 쉼과 치유를 제공한다는 것이 센터의 지향점이다.

 

산문 밖으로 나온 수행

 

센터는 창수면 장육사1길 일대 약 3000평 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숙소동인 운서관과 강의동 심검당, 명상홀인 게르와 여러 부대시설이 단정하게 들어서 있다. 사방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였고, 한쪽으로는 너른 계곡물이 천천히 굽이쳐 흐른다. 풍수에서는 금계포란형의 명당이라 부른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는 고려 말 고승 나옹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고찰 장육사가 있다. 영덕은 나옹선사뿐 아니라 고려의 대학자이자 충신인 목은 이색이 태어난 고장이기도 하다. 고려의 역사와 정신이 산과 물 사이에 겹겹이 포개진 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가곡 ‘청산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왕사의 한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노랫말이다. 나옹이 이 땅을 다녀간 지 7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영덕의 산천 앞에 서니 왜 그런 시가 태어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산은 말이 없었고, 물은 머무르지 않았다. 숲의 나무들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저마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가지를 뻗고 있었다.

 

선명상치유센터의 외형은 하나의 큰 가람을 연상시킨다. 대웅전과 요사채를 닮은 전각들이 직사각형으로 둘러서 있어 얼핏 보면 수행승들이 머무는 전통 사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곳에는 상주하는 스님이 없다. 대신 재가불자와 일반인들이 드나들고 머물며 수행한다. 출가자의 수행공간이었던 선원을 재가자와 시민의 치유공간으로 새롭게 해석한 셈이다.

영덕 나옹왕사 선명상치유센터 개원식에서 박희승 센터장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그 상징성은 입구의 현판에서도 드러난다. 치유센터의 문 위에는 서예가 초당 이무호 선생이 쓴 ‘나옹왕사 선명상치유센터’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검은 바탕 위의 흰 글씨는 단정하면서도 힘차다. 행초의 흐름을 살린 붓끝에는 수행의 기백이 담겨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위압적이지 않다. 마치 이곳은 누구나 들어와 쉬어도 된다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동시에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수행의 힘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이날 개원식에는 운영 지원 사찰인 경주 불국사의 주지 종천 스님과 부주지이자 센터 운영위원장인 성행 스님이 참석해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 운영의 중심에는 재가불자인 박희승 센터장이 있다. 전통적으로 큰 사찰의 주지나 선원장 자리는 오랜 수행과 덕망을 쌓은 스님들이 맡아왔다. 그런 점에서 조계종이 재가불자를 주지나 선원장격인 센터장으로 임명한 것은 눈여겨볼 만한 변화다.

 

박 센터장은 나옹왕사가 태어난 영덕 창수면 출신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장육사를 찾았다가 법당에서 불자이자 뇌과학자인 박문호 박사를 만나 불교에 눈을 떴다고 한다. 이후 동국대를 졸업하고 조계종 총무원 기획차장과 총무원장 보좌관 등을 지냈다. 현대의 선지식으로 존경받은 고우 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우고 명상지도자로서의 역량도 쌓았다. 고향의 역사와 불교 수행, 종단 행정 경험을 함께 갖춘 인물이니 센터가 지향하는 방향과도 잘 어울려 보였다.

선명상 리더스포럼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센터 야외에 마련된 몽골식 원형 천막 게르 안에서 짧은 선(禪) 명상도 체험해 봤다. 처음에는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명상이 설명을 들으며 따라 해 보니 의외로 담백하고 편안했다. 마음을 억지로 비우려 애쓰기보다, 그저 생각을 멈춰 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집에 돌아가서도 혼자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선명상은 어렵기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의 곁에는 종교의 경계를 넘어 여러 사람이 힘을 보태고 있다.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는 스트레스와 인간의 마음을 과학의 언어로 풀어내고, 성악가 김성록은 청량한 목소리와 따뜻한 노래로 수련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예정이다. 선명상이 불교의 수행법에만 머물지 않고 과학과 예술, 건강과 일상의 언어를 만나는 지점이다.

 

사찰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재가불자인 사찰음식 전문가가 식단을 맡았다. 개원식 날 점심과 저녁, 이튿날 아침 공양까지 맛보았는데 연잎밥과 제철 나물, 담백한 반찬이 눈과 입을 함께 즐겁게 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정성이 느껴졌다. 음식을 내어주는 공양주들의 엷은 미소까지 더해지니 한 끼 식사가 수행의 일부처럼 다가왔다.

선명상 리더스포럼에서 박문호 박사가 인체의 반응에 대해 열강을 하고 있다.

‘나’를 찾는 사회적 실험

 

센터는 앞으로 1박 2일과 3박 4일 일정의 선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명상과 요가, 자연건강식을 기본으로 나옹왕사의 탄생지와 출가지, 오도와 교화의 흔적을 따라가는 순례와 지역 역사문화 탐방도 곁들인다. 지역 주민을 위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과 복지관 순회 활동, 선명상 축제와 산사음악회, 리더스포럼도 준비하고 있다.

 

선명상치유센터는 전통 승가의 선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으로 보였다. 선원은 오랫동안 출가 수행자들이 화두를 참구하며 깨달음을 추구해 온 수행의 중심이었다. 일반인에게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조계종은 그 수행의 전통을 산문 밖으로 꺼내 현대인의 삶 속으로 가져오려 한다. 지방소멸이 현실이 된 오늘, 이 실험은 지역의 미래와도 맞닿아 있다. 영덕의 자연과 역사, 불교문화가 어우러져 새로운 치유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면 영덕은 바다와 대게의 고장을 넘어 ‘마음이 쉬어 가는 도시’라는 또 하나의 정체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참가자 일행이 귀가 길에 영덕에 면한 동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옹왕사 선명상치유센터는 이제 막 문을 열었다.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보듬고, 지역과 종교의 경계를 넘어 어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갈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조계종은 지금 영덕에서 현대인이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게 하는 조용하고도 의미 있는 실험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