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경기 만에 마수걸이포 터뜨린 NC 블레인 “아내가 ‘이제 증명해야 될 때야’라고 했는데 홈런 쳐서 기쁘다” [남정훈의 비욘드 더 그라운드]

[잠실=남정훈 기자]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대포 한 방이 드디어 터졌다. NC의 새 외국인 타자 블레인 크림이 KBO리그 입성 11경기 만에 마수걸이포를 터뜨렸다.

 

블레인은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KBO리그 LG와의 원정경기에서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NC가 3-2로 앞선 5회 2사 2,3루에서 세 번째 타석에 선 블레인은 볼 카운트가 0B-2S로 몰렸다. LG 선발 라클란 웰스는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해 시속 146.8km짜리 하이 패스트볼을 던졌다. 평소 높은 코스를 좋아하는 블레인은 과감하게 배트를 휘둘렀고, 밀어친 이 타구는 113.9m를 날아가 잠실구장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블레인의 KBO리그 첫 홈런포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 홈런포로 NC는 6-2로 리드폭을 크게 늘리며 승기를 잡았다.

 

홈런포가 터지자 블레인에겐 행운도 따랐다. LG가 두 점 따라붙어 6-4 리드 상황에서 7회 2사 2루에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선 블레인은 빗맞은 플라이를 쳤다. 그러나 이 타구는 1루수 오스틴, 2루수 신민재, 우익수 홍창기가 잡을 수 없는 곳에 떨어졌다. 위치상 오스틴이 잡는 게 맞았지만, 타구를 잃은 듯 했다. 블레인의 행운의 적시타로 NC는 7-4로 달아났고, 경기 막판 김한별의 ‘슈퍼 캐치’까지 나오며 7-5 승리를 거뒀다.

 

LG와의 주중 3연전에서 비로 취소된 22일 경기를 빼고 나머지 2경기를 모두 잡은 NC는 중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KT와의 후반기 첫 4연전을 모두 내줬던 LG는 NC에게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후반기 6전 전패를 당했다. 10개 구단 통틀어 후반기에 아직 승리를 신고하지 못한 건 LG가 유일하다. LG의 연패는 전반기 마지막 경기까지 포함하면 7연패다.

 

블레인은 NC가 2024시즌 홈런왕인 맷 데이비슨을 방출하고 데려온 선수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5년 연속 20홈런 이상 때려낸 만큼 장타력이 기대됐지만, 이날 경기 전까지 10경기에서 타율은 0.333(36타수 12안타)로 나쁘진 않았지만, 장타는 2루타 2개가 전부였다. 장타 생산 능력이 아쉬웠던 상황에서 천금같은 홈런포를 때려내며 드디어 NC의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한 블레인이다.

 

경기 뒤 더그아웃에서 취재진과 만난 블레인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경기 시작 전 비가 내린터라 워낙 습하기도 했지만, 홈런의 기쁨이 가시지 않았으리라. 블레인은 “정말 홈런을 치고 싶었다. 기다려왔던 만큼 중요한 순간에 나왔기에 어깨에 짊어졌던 짐을 한결 내려놓은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11경기 만에 나온 홈런포. 블레인 스스로도 압박을 주고 있었다고. 그는 “팀 동료들이 묵묵히 기다려주는 걸 느꼈다. 그래서 좀 더 빨리 치고 싶었다”라면서 “홈런이 나오지 않는 걸 신경쓰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 스스로에게 압박을 일부러 주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하지는 못했단다. 블레인은 “두 번째 타석에서 웰스에게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는데, 그때 공격적으로 피칭하더라. 그래서 세 번째 타석에선 타점만 내자라는 마음으로 임했다”라면서 “잠실구장이 워낙 큰 구장이기 때문에 넘어갈 것이란 생각은 못하고, 2루타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데 운 좋게 넘어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블레인은 높은 코스의 공에 자신이 있다. 이날 떄린 공도 스트라이크존에서 크게 벗어난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이었다. 블레인은 “상단존을 계속 지키고 있다보면 떨어지는 변화구에도 대처가 잘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높은 코스에 좀 더 잡아놓고 치려고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NC 선수들은 마수걸이포를 터뜨린 블레인이 더그아웃에 돌아왔을 때 아무런 호응을 해주지 않는 ‘침묵 세리머니’로 맞이했다. 다만 그 침묵이 다소 길었다. 블레인은 “홈플레이트를 밟을 때 박민우가 손으로 침묵하자는 제스쳐를 취했기에 ‘침묵 세리머니’를 할 것이란 건 눈치채고 있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블레인은 지난 21일 LG전에서 수비에서 실책을 저질렀고, 공격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호준 감독은 3회말 수비에서 바로 블레인을 벤치로 불러들였다. 이에 대해 묻자 블레인은 “처음엔 다소 놀랐지만, 내 역할을 못 한 게 맞다. 감독님의 오더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감독님을 믿는다”라고 답했다.

 

이른 교체에 속상할 법 하지만, 블레인은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을 열심히 응원했다. 이 모습을 본 이호준 감독은 흡족해했다. 블레인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동료들이 잘 맞이해줬고, 녹아들 수 있게 많이 도와줬다. 그래서 빨리 교체됐다고 라커룸에 있기 보다는 동료들을 응원하며 팀 승리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블레인의 아내는 축구 선수 출신이다. 운동 선수 출신의 아내는 블레인을 누구보다 이해해주고, 때로는 채찍질도 해주는 동반자다. 그는 “아내가 경기장 안팎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독려해준다. 오늘 같은 경우에도 경기 전에 ‘이제는 좀 증명해야 될 때가 됐다’라고 얘기해줬다. 그래서 홈런이 나온 것 같다”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