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수 없었다”…군에서 모은 2000만원, 3억 가까이 됐다가 4주 만에 원금 밑으로 [숫자 뒤의 진실]

신용융자 잔고 6월24일 38조6300억원 사상 최대…7월15일 34조3700억원
단일종목 레버리지 16종 시총 4조4000억→11조9000억원…50일 새 2.7배
기본예탁금 1000만원→현금 3000만원…대용증권 제외도 31일 조기 시행

“말 그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주식시장 차트가 표시돼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Pexels

대학생 이승호(24) 씨가 군 복무 중 모은 돈은 2000만원이었다. 투자 애플리케이션의 작은 버튼을 누르면 자기 돈의 5배 규모로 투자할 수 있었다. 계좌 평가액은 빠르게 불어났다. 한때 3억원 가까이 치솟았다.

 

지난 5월 국내 증시가 거칠게 출렁이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증권사의 강제 청산이 이어졌고, 15배 가까이 불어났던 계좌는 4주 만에 처음 투자한 2000만원 아래로 내려갔다.

 

로이터가 지난 20일 보도한 이 씨의 사례다. 그는 큰 손실을 겪고도 종잣돈을 다시 모으면 돈을 빌려 시장에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상 처음 38조원 넘어선 ‘빚투’

 

이 씨가 이용한 5배 레버리지의 구체적인 상품 구조는 로이터 보도에 자세히 나오지 않았다. 국내 증권사의 신용거래융자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하루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과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상품은 달라도 원리는 비슷하다. 빚이나 파생상품을 지렛대로 투자 규모를 키우면 주가가 오를 때 수익이 커지지만, 반대로 움직일 때는 손실과 청산 위험도 함께 확대된다.

 

국내 증시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6월24일 38조6300억원까지 불어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증시가 큰 폭의 조정을 받은 뒤인 7월15일에도 34조3700억원이 남아 있었다.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인용한 로이터의 집계다.

 

신용융자는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거래다. 주가가 오르면 자기 돈만 투자했을 때보다 수익이 커지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도 빠르게 불어난다.

 

주식의 담보가치가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투자자는 부족한 담보를 채워야 한다. 기한 안에 추가 자금을 넣지 못하면 증권사는 투자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식을 처분할 수 있다.

 

급락장에서 반대매매가 한꺼번에 나오면 주가는 더 밀릴 수 있다. 추가 하락이 다른 계좌의 청산을 부르는 악순환도 벌어진다. 상승장에서 자산을 키운 레버리지가 시장이 흔들리는 순간 계좌를 무너뜨리는 압력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11조9000억원은 ‘유입액’이 아니다

 

투자자가 직접 돈을 빌리는 신용거래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하루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도 거래가 몰렸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월27일 출시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ETN 16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상장 당시 4조4000억원에서 7월15일 11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50일 만에 약 2.7배가 됐다.

 

다만 11조9000억원이 모두 새로 유입된 투자금은 아니다. 시가총액은 상장 수량에 시장가격을 곱한 값으로, 신규 설정과 환매는 물론 상품 가격 변동까지 함께 반영된다. 따라서 이를 ‘11조9000억원이 유입됐다’고 표현하면 실제 자금 유입 규모를 부풀릴 수 있다.

 

거래 열기는 시가총액 증가세보다 거셌다. 7월15일 하루 거래대금은 13조원으로 당시 전체 시가총액 11조9000억원을 웃돌았다. 같은 상품이 하루에도 여러 번 사고 팔렸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증시 의존도도 높아졌다. 두 회사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34%에서 7월15일 52%로 상승했다.

 

지난 5월26일부터 7월10일까지 일간 수익률 변동성을 연율화한 수치는 SK하이닉스가 113%, 삼성전자가 96%였다. 같은 기간 미국 샌디스크는 131%, 마이크론은 123%, 일본 키옥시아는 118%였다.

 

금융당국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운용하기 위해 이뤄지는 대규모 재조정 거래가 기초 종목과 시장의 변동성을 더 키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증시 변동성을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만의 문제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금융위 자료에서도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주요 메모리 반도체 기업 주가 변동성이 함께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2배’일 뿐, 누적 수익률은 다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기초 종목의 ‘하루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한다. 장기간의 누적 수익률까지 정확히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100원이던 주식이 첫날 10% 올라 110원이 된 뒤 다음 날 10% 떨어지면 99원이 된다. 이틀간 누적 손실률은 1%다.

 

같은 흐름을 2배로 추종하는 상품은 첫날 20% 올라 120원이 되고, 다음 날 20% 떨어져 96원이 된다. 누적 손실률은 4%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될수록 이른바 ‘음의 복리효과’가 커질 수 있다. 금융당국도 시장이 횡보하더라도 투자금이 줄어들 수 있어 장기 투자에 적합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운용보수와 거래비용, 추적 오차까지 더해지면 기초 종목과의 수익률 차이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주가가 오르면 수익이 두 배’라는 설명만 보고 오래 보유했다가 예상과 다른 결과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집은 멀고, 레버리지는 가까웠다

 

일부 청년이 고위험 투자에 뛰어드는 배경에는 월급과 저축만으로 자산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좌절감이 깔려 있다.

 

로이터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평균 임금의 약 14년치에 달해 젊은 세대가 주택을 통한 전통적인 자산 형성에서 밀려났다고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씨 한 사람의 선택을 청년층 전체의 투자 성향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이 씨는 주식의 변동성을 위험보다 기회로 봤다. 주가가 오를 때 레버리지를 이용하면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목표는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하고 결혼해 자녀를 키우는 것이다. 큰 손실을 겪고도 다시 돈을 빌리겠다는 선택은 투자 문턱을 높이는 조치만으로 레버리지 수요를 완전히 꺾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금 3000만원, 이달 31일부터 있어야 산다

 

금융당국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출시된 지 50일 만인 지난 16일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시장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인버스와 커버드콜을 포함한 단일종목 관련 상품의 신규 상장을 잠정 중단했다.

 

이미 거래 중인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광고·이벤트성 마케팅도 즉시 금지했다.

 

당초 개인 일반투자자의 기본예탁금은 8월5일쯤 기존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높이고, 8월19일쯤부터 주식·ETF·채권 등 대용증권을 예탁금에서 제외할 계획이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등 관계기관은 지난 24일 두 조치의 시행일을 이달 31일로 앞당긴다고 밝혔다. 증권업계가 전산 개발 일정을 단축해 당초 계획보다 일찍 시행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31일부터 개인 일반투자자가 국내외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새로 사거나 추가 매수하려면 계좌에 현금 3000만원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기존에 보유한 주식이나 ETF, 채권 등 대용증권은 예탁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거래 경험이 쌓였다는 이유로 증권사가 예탁금 기준을 낮춰주는 것도 금지된다. 증권사가 기준을 3000만원보다 높게 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현금 인정 기준도 까다로워진다. 증권을 판 대금은 결제가 끝나 실제 현금이 계좌에 입금되는 T+2일부터 기본예탁금으로 인정한다. 매도 대금을 담보로 빌린 돈도 예탁금 산정에서 제외한다.

 

기한 안에 전산 개발을 마치지 못한 증권사에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신규 거래 취급을 제한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투자자 사전교육도 강화한다. 현재는 일반 레버리지 상품 기본교육 1시간과 단일종목 상품 심화교육 1시간 등 총 2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앞으로 심화교육을 한 시간 추가해 총 교육시간을 3시간으로 늘린다. 중간평가에서 60점에 미달하면 해당 내용을 다시 학습해야 한다. 평가 강화는 7월 중, 교육시간 확대는 8월 중 시행할 예정이다.

 

유동성공급자에게 적용되는 국내 ETF 괴리율 관리의무 기준은 3%에서 2%로 강화한다. 투자유의종목 지정 절차도 기존 3단계에서 2단계로 줄인다. 이 조치는 8월19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레버리지 투자로 급격한 수익과 손실을 경험한 청년 투자자의 사례를 재구성한 이미지. 기사 속 인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챗GPT 생성

국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매매수량 단위를 현행 1좌에서 20좌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20좌는 잠정안이다. 당초 11월 시행을 목표로 했지만 관계기관은 단주 처리 절차와 전산 개발을 서둘러 시행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조인기 엑스니스 선임 금융시장 전략가는 로이터에 이번 대책을 이미 드러난 정책 오류를 바로잡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레버리지가 상승할 때 자산을 늘리는 속도보다 하락할 때 손실을 키우는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6월22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도입을 두고 “어떻게든 그때 드러누워서 막았어야 했나 개인적으로 반성하는 상황이고, 후회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추가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씨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종잣돈을 다시 모으면 돈을 빌려 주식시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군에서 모은 2000만원이 3억원 가까이 불었다가 원금 아래로 내려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