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후 첫 등판이라 그 어느 때보다 잘 던지고 싶었을 텐데...상황이 가혹했다. 아니 그런 가혹한 상황에 등판시킨 사령탑의 잘못이 더 크다. 내야수 하주석과 1대1 맞트레이드되어 KIA에서 한화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베테랑 우완 불펜 이형범(32)이 이적 후 첫 등판을 크게 망쳤다.
이형범은 25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6 KBO리그 LG전에서 4회 5-4로 앞선 무사 만루 상황에 등판해 0.2이닝 동안 피안타 2개 볼넷 1개를 내주고 5-9로 역전을 허용한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KIA에서 뛰던 이형범은 지난 23일 한화 내야수 하주석과 1대1 트레이드로 한화 유니폼으로 바꿔입었다. 나름 안정적인 선발진에 비해 허약한 불펜진이 고민이었던 한화는 KIA에서 19경기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한 이형범을 통해 불펜진 강화를 노렸다.
다만 데이터만 보면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형범의 투구에는 맹점이 있다. KIA에 이형범의 보직은 추격조. 주로 크게 이기고 있는 경기나 크게 뒤지고 있는 경기의 막판에 등판한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승패나 세이브, 홀드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타자들의 방망이는 무뎌지기 마련. 이 때문에 평균자책점이 3.00으로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한화 김경문 감독은 이형범을 필승조로 사용하려는 것이었을까. 김 감독은 1회부터 난타당한 선발 류현진을 2이닝만 던지게 하고 3회부터 박준영(사이드암)을 올려 불펜 운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박준영은 4회 들어 안타-2루타-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만루에 몰렸다.
타석엔 오스틴. 김 감독의 선택은 이형범이었다. 이적 후 첫 등판을 무사 만루 상황에, 타석에는 올 시즌 ‘타격 1황’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틴이라니. 사지에 밀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형범으로선 추격조 역할만 하다 리드하고 있는 터프한 상황에 올랐으니 기뻤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너무나 가혹한 상황에서의 등판이었다.
결국 이형범은 부담감과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오스틴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밀어내기를 허용했다. 5-5 동점.
이적 후 첫 등판에서 볼만 네 개를 던졌으니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배길 리가 있나. 문정빈에게 초구에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맞았고, 문보경에게는 우측 펜스인 ‘몬스터월’을 직격하는 적시 2루타를 얻아맞았다. 어느덧 5-8.
그나마 구본혁의 2루 땅볼 때 2루수 이도윤이 정확한 홈 송구로 홈으로 파고들던 문정빈을 태그 아웃하게 만들면서 이형범의 이적 후 첫 아웃카운트가 아로새겨졌다. 후속타자 박동원을 3루수 앞 병살타성 땅볼로 유도했지만, 수비진의 어설픈 송구가 이어지면서 발이 느린 박동원마저 1루에서 세이프되면서 이닝을 끝낼 기회를 놓쳤다. 그 사이 3루 주자 문보경이 홈을 밟아 5-9.
그러자 김 감독은 이형범을 내리고 좌완 이교훈을 올렸다. 그러나 이교훈은 올라오자마자 연속으로 볼넷 3개를 내주면서 이형범의 책임주자인 박동원이 홈을 밟으면서 이형범의 자책점은 3점으로 늘어났다.
4회에만 무려 9점을 내주며 5-4 리드를 5-13의 8점차 열세 상황으로 바꿔버린 김 감독의 무리한 투수운영. 류현진의 몸에 무슨 이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화 타선이 0-4로 뒤진 2회에만 5점을 내며 역전했기에 분명 이길 수 있는 찬스는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2이닝 46구를 던진 류현진을 마운드에서 내리는 결단을 내렸고, 이게 패착이 됐다. 김 감독의 무리한 투수 운영 덕분에 LG는 8연패를 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