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중개 없이 전세계약서만 써준 공인중개사도 대출 사기 책임”

실제 집주인 의사 확인할 서류 등 확인 안 한 중개사
대법원 “주의의무 위반…손배책임 ‘제한적’ 인정”

당사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대출 사기범의 말만 듣고 가짜 전세계약서를 써 줬던 공인중개사가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5월29일 대부업과 대부중개업을 영위하는 A사가 공인중개사 B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연합뉴스

B씨는 2020년 11월 쌍방 대리인 행세를 한 C씨의 말만 믿고 전세계약서를 작성해주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B씨는 실제 집주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인감증명서 등 최소한의 서류를 확인하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C씨는 위조 전세계약서를 활용해 A사로부터 1억원의 전세보증금 담보 대출을 받았다. 이후 C씨는 870여만원을 갚고 2021년 7월 이후 원리금을 한 푼도 변제하지 않았다.

 

이에 A사는 B씨가 C씨 말만 믿고 중개 행위 없이 전세계약서만 작성해주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B씨를 상대로 공동불법행위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A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중개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는 통상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목적의 규범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출을 업으로 하는 원고를 보호하는 데까지 확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B씨가 임대차계약을 중개한 과정에서 어떠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A사의 손해 발생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B씨가 공인중개사로서 주의의무를 위반한 행위는 C씨의 대출금 편취 범행을 용이하게 하는 ‘방조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며 B씨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B씨가 중개행위 없이 전세계약서만 작성해 C씨에게 교부한 행위는 공인중개사법상 공인중개사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이로 인해 ‘가장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 담보 대출을 실행한 A씨가 대출금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B씨는 쌍방 대리인 행세를 하는 C씨 말만 믿고 임대인과 임차인을 대면하지 않은 채 전세계약서를 작성해주었다”며 “B씨가 대리인 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B씨도 C씨 일당의 조직적·계획적 범행에 속아 계약서를 작성해준 것으로 보인다며 B씨의 손해배상 책임이 ‘제한적’으로 인정된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