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체 가능한 공급처로만 보거나, 반대로 위험 요소로만 파악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김종문 글로벌혁신센터(KIC중국) 센터장은 지난 22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현상으로 보는 한국의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1950년대부터 컴퓨팅과 전력, 첨단 자원 등 과학기술 발전에 필요한 기반을 구축해온 결과가 인공지능(AI)과 로봇, 반도체, 바이오산업에서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KIC중국은 2016년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으로, 한국 창업기업의 중국 시장 개척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최근 5년간 중국이 ‘저비용 제조 기지’에서 ‘초고속 혁신·실증 플랫폼’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고 진단했다. 막대한 제조 인프라와 데이터, 거대한 내수시장까지 결합하면서 기술 개발과 상용화가 동시에 속도를 내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산업 중 한국이 가장 경계해야 할 분야와 가장 협력 가능성이 큰 분야는.
“모든 분야에 대해 경계해야 하지만 특히 반도체와 AI 응용 소프트웨어 쪽이다. 최근 전문가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 메모리와 고성능 센서 등 한국이 우위를 점했던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이 매우 가파르며, AI 반도체와 전력 반도체 기초 역량에서는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바이오산업 역시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와 축적된 관련 데이터, 테스트장비, 임상시험 등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 중국의 자신감과 발전 속도, 거기에 AI와의 연계를 고려하면 한국은 거의 모든 중국 산업에 대해 경계하고 준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한·중 협력 가능성이 큰 분야는 체화지능을 포함한 로봇 및 스마트 제조 산업이다. 이는 투자자를 비롯한 한·중 기업가들이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한국은 정밀 제어, 스마트 센서, 핵심 부품 분야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기술을 가지고 있고 중국은 방대한 제조 인프라, 데이터, 거대한 응용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양국의 강점이 결합한다면 공급망 안정화 측면에서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중국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한 가장 큰 원동력은.
“네 가지 핵심 원동력이 있다. 첫째,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인프라 구축이다. 국가 벤처 캐피털 펀드 등을 통해 양자 컴퓨팅, 생성형 AI, 반도체 연구개발(R&D)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와 같은 AI 인프라가 빠르게 확충돼 학습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둘째, 압도적인 인재 파이프라인과 산학 협력이다. 중국 대학들은 미국보다 두 배 많은 AI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으며, 최상위 연구의 70%가 현지 기업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셋째, 거대한 내수시장과 다양한 응용 시나리오다. 14억명의 인구와 방대한 산업 현장이 AI 기술의 빠른 상용화와 데이터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 넷째는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으로, 중국은 오랫동안 과학기술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컴퓨팅 산업, 지하자원, 전력 등의 기술 자립은 1950년대부터 준비해 왔다. 중국 과학기술 굴기는 어느 순간 한 번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을 바라볼 때 많이 하는 착각이나 실수는.
“삼국지와 공자, 중국의 역사에 비춰 현재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아예 중국을 몰랐다면 배우는 자세로 지금의 중국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다시 말해 중국 시장과 중국 시스템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동안 부족했다. 과거의 성공 공식에 얽매여 중국의 현재 경쟁력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과거 배터리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이 인산철리튬(LFP) 노선을 간과했다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크게 잃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한 중국을 단순한 판매처나 하청 생산지로만 생각해, 중국의 빠른 R&D 및 생산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AI와 로봇 산업은 몇 달, 심지어 몇 주 단위로 진화하는데 한국의 기존 속도로는 이 경쟁 리듬을 따라갈 수 없다. 중국 시장에 들어와 실제 경쟁의 강도를 체감하고 현지 공급망에 적극 편입돼야 한다.”
―중국 시장에서 지금도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산업 분야가 있다면.
“여전히 한국 기업은 정밀 제조, 고품질 소재 및 부품, 특화 바이오·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중국 내 대규모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동하며 핵심 공급망의 역할을 하고 있듯 정밀 감속기, 특수 합금, 고성능 센서 등 휴머노이드와 첨단 제조의 핵심 부품 분야에서는 한국의 기술적 우위가 여전히 유효하다. 또 디지털 치료제, 원격 의료, 웨어러블 헬스케어 등 한국의 정보기술(IT) 역량과 의료 노하우가 결합한 분야에서도 협력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은 한국의 어떤 기술과 산업에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나.
“중국의 과학기술기업은 한국 시장을 교두보로 한 글로벌 진출에 관심이 많다. 이에 KIC중국도 한국이 글로벌 전략에 강점이 많으며, 중국 기업의 글로벌 진출에 가장 중요한 거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BYD, 메이퇀, JD, 샤오미 같은 대기업과의 교류에서도, 갤봇, 유니트리, 딥로보틱스 같은 피지컬AI 기업 경영진에게도 이 부분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중국 기술기업들은 한국이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제조업의 디테일과 핵심 소재·부품 기술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과 스마트 팩토리 분야에서 정밀 감속기, 고밀도 배터리, 특수 합금 및 정밀 센서 기술에 대한 니즈가 매우 크다.”
―미·중 기술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도 한·중 기술 협력은 계속 확대될 수 있을까.
“반대로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한국은 20% 이상의 수출입액을 차지하는 중국을 배제하고 다른 국가와의 협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까. 한국 입장에서 중국은 중요한 수출국이면서 한국 제조업에 필요한 중요한 공급망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 투자나 협력을 떠나서 중국 시장과 중국 공급망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중 기술 경쟁이 격화하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존재하고 있지만 정치적 논리만으로 완전히 단절될 수 없는 ‘깊이 얽힌 공급망’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한·중 기술 협력은 새로운 형태로 계속 확대될 것이다.”
―30년 가까이 중국 산업을 지켜봤는데, 지금 한국이 놓치고 있는 것은.
“중국의 주요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하이테크 산업에서의 관찰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지역, 어느 회사에서 어떤 부품이 나오고, 어떤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생태계를 확장하는지, 그리고 중국 정부의 산업 정책이 실제 현장 투자와 연결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부족하면 한국 기업은 중국을 대체 가능한 공급처로만 보거나, 반대로 위험 요소로만 파악해 협력 기회를 지나치기 쉽다. 중국에 진출했거나 진출하려는 기업은 많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려는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은 과거에도 현재도 중국을 장기적 협력 파트너로 생각하는 기관과 개인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 한·중 간 신뢰관계가 구축될 수 없다. 장기적 협력을 이끌 수도,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이 가장 놓치고 있는 것은 중국과의 장기적 협력 의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종문 글로벌혁신센터(KIC중국) 센터장은…
●1975년생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 경영학(기업관리) 석사 ●중국 인민대학 상학원(경영대학) 경영학 박사 ●노키아(중국) 글로벌 구매팀(2005∼2014년) ●마이크로소프트(중국) 휴대폰사업부 글로벌구매팀(2014∼2015년) ●외교부 동아시아문화센터 북경사무소장(2015∼2021년) ●국회 한중의원연맹 자문위원 ●글로벌혁신센터(KIC중국) 센터장(2021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