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 안방극장을 접수했던 청춘스타의 지갑 속에는 무려 1억5000만원이라는 수표가 상시적으로 꽂혀 있었다. 은행에 갈 시간조차 없을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달리던 전성기의 날들 속에서, 그 압도적인 수입이 향한 최종 목적지는 화려한 사치나 무절제한 유흥이 아니었다. 눈부신 조명 뒤에 가려진 한 인간의 책임감과 가족을 향한 헌신이 그 돈의 진짜 주인이었다.
배우 이창훈은 최근 방송된 MBN 예능 프로그램 ‘당신이 아픈 사이’에 출연해 30년 전 전성기 시절의 압도적인 수입과 관련된 일화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당시 개그맨 윤정수와 함께 연예계에서 슈퍼카를 타던 유일한 양대 산맥으로 꼽힐 정도로 승승가도를 달렸던 그는, KBS 전속 계약 당시 드라마 100회 출연료를 선불로 지급받는 파격적인 대우를 누렸다. 계좌 이체가 보편화되기 전 현장에서 직접 건네받았던 7800만원짜리 수표를 비롯해, 바쁜 스케줄 탓에 은행에 갈 겨를조차 없어 지갑에 억대 현금을 품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1989년 MBC 19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창훈은 곧바로 안방극장의 핵심 주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엄마의 바다’에서 고소영과 호흡을 맞추며 대중의 눈도장을 찍은 그는 납량특집의 전설인 ‘M’을 비롯해 ‘순풍산부인과’, ‘야인시대’의 하야시 역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작품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병헌의 뒤를 잇는 차세대 주자로 꼽히며 당대 최고 여배우들의 상대역으로 활약했던 그의 황금기는 쉼 없는 연기 활동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가장 치열했던 절정의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언제나 가족을 향해 있었다. 스스로를 돌볼 겨를조차 없이 수십 개의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벌어들인 소득의 상당 부분을 가정을 부양하는 데 아낌없이 사용했다. 주변의 유혹이나 투기성 투자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직 연기와 가족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지켜낸 철저한 자기 관리가 거액의 자금이 지닌 무게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듯, 안방극장의 최전선에서 물러나는 순간도 찾아왔다. 그는 여러 루머와 과도한 시선에 마음고생을 겪기도 했으며, 주연의 자리를 내려놓은 채 아침극과 일일극을 오가는 침체기를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원망이나 불평을 쏟아내는 대신,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고 성실함으로 현장을 지켰다. 쪽대본을 손에 쥐고 연습을 거듭하던 끈기와 완벽한 연기를 증명해내던 집념이 오랜 세월 배우로서의 생명력을 든든하게 지탱했다.
무엇보다 지갑 속 1억5000만원이라는 큰돈이 품은 가치는 그 자금이 향한 방향에 있었다. 7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1남 4녀를 키우며 일하다 59세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향한 책임감이 그 돈을 움직인 진짜 이유였다. 이창훈은 이 돈으로 어머니에게 주택을 사드리고, 그 집에서 함께 보냈던 시간이야말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데뷔 후 37년이란 세월 동안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오직 자신의 땀방울로 가정을 지켜 온 이창훈의 삶은 한 인간으로서의 깊이와 진정성을 보여준다. 억대 수표를 품고 다니던 청춘의 풍경보다 그 돈으로 어머니의 안식을 먼저 챙겼던 아들로서의 행보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최근 교양 프로그램과 예능을 통해 소탈한 일상을 공개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그의 모습 속에는 긴 세월을 견뎌낸 배우로서의 품격이 고스란히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