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특급’ 박찬호(53)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단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을 베팅했다. 한국인 최초 빅리거에서 MLB 구단 투자자로 변신한 것이다. 이번 투자를 단순히 한 야구인의 오랜 꿈으로만 보기엔 숫자가 심상치 않다. 박찬호가 이끄는 투자 컨소시엄 ‘팀61’이 선택한 애슬레틱스는 2028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17억5000만달러(약 2조5000억원)를 투입해 3만3000석 규모의 새 구장을 짓는다. 기존 팬덤보다 미래 구단가치에 베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팀61’은 27일 서울 강남구에서 애슬레틱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식화하면서 총 7000만달러(약 1027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박찬호는 이번 투자로 구단 지분 3% 이상을 확보하게 된다.
7000만달러는 단순한 개인 투자가 아니라 애슬레틱스의 미래 가치에 대한 베팅이다. 포브스가 평가한 애슬레틱스의 2026년 구단가치는 20억달러(약 2조8000억원)로, 2017년 8억8000만달러에서 9년 만에 127.3% 뛰었다. 최근 2년 사이에도 12억달러에서 20억달러로 66.7% 상승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2억4100만달러에서 3억2000만달러로 늘었고 영업이익은 4500만달러를 기록했다.
박찬호가 애슬레틱스를 선택한 이유도 결국 이런 성장 여력 때문이다. 이미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나 뉴욕 양키스처럼 오랜 역사와 거대한 팬덤을 가진 구단은 외부 투자자가 지분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박찬호는 과거 다른 MLB 구단에도 지분 참여를 시도했지만 기존 팬베이스가 탄탄한 구단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반면 애슬레틱스는 연고지 이전과 신구장을 발판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단계에 있다.
애슬레틱스 성장 전략의 중심에는 2028년 개장할 신구장이 있다. 구단은 17억5000만달러를 들여 3만3000석 규모의 돔형 신구장을 건설하고 2028년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의 옛 트로피카나 부지에 들어서는 신구장은 야구와 관광·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스포츠 비즈니스 거점이 될 전망이다. MLB 공식 자료에 따르면 구단은 연고지 이전을 앞두고 신규 팬 확보를 위해 유니폼 패치 판매와 시즌권 우선 구매 프로그램 등을 시작했다. 시즌권 우선 구매 리스트 등록비는 구단 창단 연도인 1901년을 상징하는 19.01달러로 책정했다.
신구장의 잠재력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3만3000석을 모두 채운다고 가정하면 정규시즌 81차례 홈경기에서 단순 좌석 기준 누적 관중은 267만3000명에 달한다. 여기에 스위트룸과 프리미엄 좌석, 식음료, 굿즈, 광고, 주차 등 다양한 부대 수익이 더해진다.
새 시장을 키우려는 애슬레틱스의 시선은 이제 KBO리그로 향한다. 28일 기준 2026년 KBO리그 10개 구단 홈경기 평균 좌석 점유율은 86.7%로 지난해 82.2%보다 4.5%포인트 상승했다. 평균 관중도 1만7101명에서 1만7996명으로 늘었다. 올해 예상 총 입장 관중은 1295만7120명으로 3년 연속 1000만 관중 돌파가 유력하며, 장마철 변수를 고려하면 1300만 관중도 기대된다. 한화(98.2%), 삼성(97.1%), LG(96.7%)는 95%가 넘는 좌석 점유율을 기록했고, 두산도 89.0%로 평균 관중 2만명을 넘어섰다.
이런 시장을 겨냥하듯 존 피셔 애슬레틱스 구단주와 마크 버데인 사장 등은 전날 KBO를 찾아 허구연 총재와 선수 육성·마케팅·구장 운영 등의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피셔 구단주는 KBO리그의 관중 증가세와 독특한 응원 문화에 관심을 나타냈고, 2028년 개장을 목표로 하는 라스베이거스 신구장도 화제에 올랐다. 허 총재는 국내 돔구장 건립에 참고할 수 있도록 구장 건립 경험과 노하우 공유를 요청하고 KBO 관계자들의 현지 견학도 제안했다.
박찬호는 자신의 역할을 ‘브릿지(Bridge)’라고 표현했다. 수석고문으로서 스카우트와 투수 육성, 팬덤 구축에 참여하며 한국 야구와 애슬레틱스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애슬레틱스도 박찬호의 이런 ‘브릿지’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구단은 KBO리그 팀의 라스베이거스 초청 가능성을 언급했고, 한국 선수 발굴을 위한 스카우트 활동 확대 계획도 소개했다.
물론 위험도 적지 않다. 신구장 건설에 투입되는 비용은 현재 구단가치의 87.5%에 이른다. 라스베이거스에는 NFL 레이더스와 NHL 골든나이츠도 이미 자리 잡았다. 애슬레틱스가 구단가치를 더 키우려면 야구팬뿐 아니라 관광객과 기업, 해외 팬까지 끌어들여야 한다.
박찬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애슬레틱스에서 뛰는 한국인 빅리거의 탄생이다. 그는 “아직 애슬레틱스에 한국 선수가 없다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임무처럼 느껴진다”며 한국 선수가 애슬레틱스 모자를 쓰고 라스베이거스의 새 구장에서 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야구팬에게 MLB를 친숙한 무대로 만든 박찬호는 이제 선수 대신 투자자의 위치에서 또 다른 승부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