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가르치려 들어?”… 프랑스에 호통친 미국 외교관

프랑스 유엔 대표부, SNS 글에서 미국 비판
“美, 더는 인권 등불 아냐… 북한처럼 고립”
미국 대표단, 회의 도중 퇴장으로 항의 표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 도중 프랑스 대표가 발언에 나서자 미국 대표단이 회의실 밖으로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 인권 정책을 비판한 유엔 주재 프랑스 대표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이 발단이었다.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의 댄 네그레아 대사. 27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 도중 프랑스 대표가 발언하는 동안 일부러 퇴장해 화제가 됐다. SNS 캡처

27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주제로 안보리 회의가 열렸다. 안보리는 ‘거부권’(veto power)을 지닌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5개 상임이사국과 임기 2년의 10개 비상임이사국 등 15개 이사국으로 구성된다.

 

제롬 보나퐁 주(駐)유엔 프랑스 대사가 발언 기회를 잡자 미국 행정부 대표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댄 네그레아 대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네그레아는 “오늘 우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무력 충돌에 관해 논의하려고 하는데, 이 자리에는 그와 전혀 무관한 인권 같은 주제를 갖고 우리 모두를 가르치려 드는 듯한 구성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우리는 프랑스가 부당한 간섭을 일삼는 동안 회의장 밖에 나가 있겠다”고 덧붙였다. 그 뒤 네그레아를 비롯한 미국 대표단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퇴실했다.

 

유엔 최고의 의사 결정 기구인 안보리에서 회의 도중 특정 국가 대표단이 퇴장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프랑스에 대한 미국의 강한 불만은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소에 주재하는 프랑스 대표부가 지난 24일 SNS에 올린 게시물에서 비롯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날 제네바 유엔 사무소에선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 연임안을 놓고 표결이 이뤄졌다.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이 튀르크 낙마를 위해 노력했으나 찬성 144표, 반대 10표, 기권 13표로 가뿐히 유엔 총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지난 2022년 10월 임기 4년의 유엔 인권최고대표로 선출된 튀르크는 오는 2030년 10월까지 재직할 수 있게 됐다.

 

오스트리아 법학자 출신인 튀르크는 앞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 등을 성토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로는 미국의 반(反)이민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중이다. 이민자 수용 시설 내 사망 사건에 대한 유엔 차원의 조사까지 촉구해 온 튀르크는 백악관과 미 행정부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유엔 주재 프랑스 대표부의 제롬 보나퐁 대사가 27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프랑스에 대한 항의 표시 차원에서 그가 발언하는 동안 미국 대표단이 자리를 떴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튀르크 연임이 확정된 뒤 프랑스 유엔 대표부는 SNS에 영어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 “미국은 한때 인권의 등불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글은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미국은 오늘날 북한, 니카라과, 말리, 러시아와 함께 고립되어 있다. 전 세계는 더 이상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 국가로 알려진 북한과 나란히 언급됐으니 미국 외교관들 입장에선 분노를 느낄 만하다.

 

이날 보나퐁 대사는 미국 대표단의 회의실 퇴장에 관해선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올해가 미국 독립 250주년이란 점을 언급하며 “프랑스가 이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미국의 독립 전쟁은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이 없었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보나퐁 대사는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와 총회에서 모두 유엔 헌장을 준수하며 인권과 평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