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청계천 ‘빌런’

조선 시대 청계천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었다. 한양도성의 생존을 책임지는 인공 배수로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1412년 태종이 ‘개천도감’을 설치, 물길을 깊이 파고 정비하면서 도심 하천의 형태를 갖췄다. 1773년 영조는 양안에 돌을 쌓고 구불구불한 수로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도심 인구가 늘면서 청계천 주변은 오·폐수가 넘치고 냄새가 고약해 조정의 고민거리였다. 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 때 복원 사업을 통해 인공 하천으로 재탄생한 청계천은 서울 시민, 관광객 등 연간 2000만명 이상이 찾는 도심 속 휴식처가 됐다.

청계천이 ‘빌런(Villain·악당)’으로 시끄럽다. 27일 소셜미디어(SNS)에 확산된 ‘목욕하는 역대급 빌런 등장’이란 제목의 영상을 보면, 원피스를 입은 한 중년 여성이 청계천 변 돌 위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바가지로 몸에 물을 끼얹고 있다.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비누로 몸을 문지르고, 옷 속에 손을 넣어 때를 밀기까지 했다.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다. 서울시의 ‘청계천 이용에 관한 조례’는 이곳에서 수영이나 목욕 또는 이와 유사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17일에는 ‘서울의 트레비 분수’로 불리는 청계천 팔석담 소망석에 시민과 관광객들이 던진 ‘행운의 동전’을 중년 남녀가 무단으로 가져가 논란이 일었다. 이들은 소망석 내부와 주변 물속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서 주머니와 가방에 넣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 동전들은 서울시가 서울장학재단,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전액 기부하는 공익 자산이다. 지난 3월에는 한 외국인이 청계천을 거닐던 백로를 붙잡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일도 벌어졌다. 최소한의 상식과 시민의식이 실종된 세태가 씁쓸하다.

청계천에서 금지 행위로 단속된 건수가 2022년 1만7587건에서 2024년 2만2797건으로 늘었다. 음주·흡연 등 위반 사례가 하루 평균 30여건 적발된단다. 전체 길이가 약 11㎞인 청계천을 관리하는 인력은 7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들에겐 과태료 부과 권한도 없어 금지 행위를 적발해도 “하지 마시라”라고 읍소하는 형편이다. 전 세계에서 방문하고 싶어 하는 서울의 이미지를 지키려면 뭔가 실효적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