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아이디어는 특허를 받을 수 있을까.
인간이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연구개발(R&D)을 수행하고 특허를 출원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면서 기존 특허제도가 전제해 온 ‘인간의 창의적 발명에 대한 독점권 부여’ 원칙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박성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은 27일 지식재산(IP) 민관협력 플랫폼인 ‘지식재산 전략포럼’ 출범식에서 ‘AI를 활용한 기술개발, 어디까지 특허로 보호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하며 “AI가 발명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인간의 창의적 발명에 독점권을 부여해 온 특허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핵심 쟁점은 AI가 만들어낸 결과물 가운데 인간의 기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이다.
박 원장은 “단순히 AI를 사용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AI의 출력을 인간이 얼마나 가공·발전시켜 독자적인 착상으로 이어갔는지가 특허 인정 여부를 좌우한다”며 “현행 특허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유지한다면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가 의제”라고 말했다.
그는 “핵심은 AI 보조 발명과 인간 기여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다”며 “AI를 발명 보조 도구로 활용한 경우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영역을 어디까지 보호할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짚었다.
글·음악 등 저작권 분야를 비롯, 각 분야 별로 인간의 저작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놓고 한국은 물론 미국·중국 등 세계는 이미 논의 중이다.
상표·디자인권 분야에서도 생성형 AI가 만든 디자인 시안을 둘러싸고 특허와 유사한 창작성과 성립성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박 원장은 “특허제도의 근본 전제는 발명을 공개하는 대가로 일정 기간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제도의 정당성은 인간에게 발명과 공개의 유인을 제공하는 데 있다”며 “그러나 AI가 발명 과정의 상당 부분을 수행하는 지금 그동안 확고했던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I를 활용한 특허 출원은 빠르게 늘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 회장은 2023년 10월 사내 생성형 AI 활용 콘테스트를 열어 약 10만 건의 발명 제안을 접수한 뒤 우수 아이디어를 선별해 1만 건 이상을 특허 출원했다.
앞서 ‘AI 자체가 발명자가 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은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AI 개발자 스티븐 탈러가 자신의 AI 시스템 ‘DABUS’를 발명자로 기재해 여러 나라에 특허를 출원하면서 촉발된 이른바 ‘DABUS 사건’은 지난해 ‘발명자가 아니’라고 마무리됐다. 이후 세계적 논의는 인간이 AI를 활용해 만든 결과물 가운데 어디까지를 인간의 창작적 기여로 볼 것인지로 옮겨붙었다.
미국 저작권청은 지난해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생성형 AI에 프롬프트(AI 명령어)를 입력하는 행위만으로는 저작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인간이 AI 산출물을 수정하거나 선택·배열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창작성은 사안별로 인정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국내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지난해 6월 발간한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 등에 기준을 내놨다.
박 원장은 “AI를 도구로 활용한 발명은 ‘실시 가능성’과 ‘인간의 기여를 입증할 자료’가 특허 출원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면서도 “AI 보조 발명을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가는 우리 사회가 어디에 기준선을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각 분야 전문가와 사회 구성원의 협의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