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직장 후배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첼로를 품에 안은 그의 모습 뒤로 펼쳐진 배경을 유심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다름 아닌 베를린 필하모니 무대였다. 후배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베를린으로 건너가 직접 공연을 올렸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한때 전업 첼리스트를 꿈꿨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진로를 바꿔 평범한 회사원이 된 케이스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늘 차에 첼로를 싣고 다니며 퇴근 후면 어김없이 오케스트라 연습실로 향했고, 틈틈이 아마추어 콩쿠르에 출전해 입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즉, 그는 ‘첼리스트가 되지 못한 사람’이 아니다. ‘직장인’의 방식으로 첼리스트의 삶을 훌륭하게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존재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방식이 객석에만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국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베를린필 하모니 공연 전경. 아티스트포룸 제공
악기를 쥐는 순간 음을 듣는 건 귀를 넘어 몸의 감각으로 옮겨간다. 합주석에 앉아본 사람은 주선율만 좇지 않는다. 제2바이올린이 붙드는 내성, 관악 주자가 다음 프레이즈를 위해 고르는 숨, 총주 직전의 정적까지 함께 듣는다. 쉼표도 빈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소리를 멈추고 타인의 소리를 받아들이기 위한 약속이 된다. 내 소리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전체의 균형을 해치면 좋은 연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익힌 뒤에는 같은 작품도 더 많은 층위를 드러낸다.
물론 아마추어 무대에는 거친 음정과 느슨한 앙상블도 있다. 이를 호의로 덮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연주의 완성도와 활동의 문화적 가치는 같은 잣대로만 재기 어렵다. 아마추어 연주자는 프로를 흉내 내다 만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보태 한 번의 연주를 성립시키는 사람이다.
연주 인구가 많아질수록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도 여러 층위가 생긴다. 본업이 따로 있는 단원들로 꾸려진 미국의 파크 애비뉴 챔버 심포니는 정규 음반을 내고 전문 비평의 대상이 됐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비전공자로 출발해 오랜 수련 끝에 전문 무대에 오른 사례도 있다. 저변이 넓다는 것은 모두가 프로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재능이 머물고 성장하며 때로는 다음 단계로 옮겨갈 길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중간지대는 활동 초기의 젊은 연주자에게도 소중하다. 협주곡은 혼자 연습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총주의 끝을 기다리고 지휘자의 손을 읽으며 목관의 응답에 호흡을 맞추는 법은 실제 합주에서 익힌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내어주는 협연 기회가 중요한 까닭이다. 현역 작곡가들도 시민 악단과 리허설을 거치며 새 작품을 다듬고 초연한다. 아마추어 악단은 그렇게 다음 연주자와 작품이 자라는 자리가 된다.
그 무대를 따라 가족과 동료, 친구도 객석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을 보러 왔다가 그날 들은 한 대목이 남아 다음에는 작품을 따라 공연장을 찾는다. 첫 표의 동기가 관계였다면 두 번째 표의 동기는 음악이 된다. 할인과 홍보만으로 만들기 어려운 애착이 한 사람의 연습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 순환을 이어가려면 학교에서 익힌 악기가 입시와 취업 앞에서 침묵하지 않도록 대학과 직장, 지역 오케스트라로 이어지는 길이 필요하다. 연습 공간과 감당할 수 있는 대관료, 프로 연주자의 파트 코칭도 뒤따라야 한다. 프로는 작품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아마추어는 그 작품이 들어갈 삶의 범위를 넓힌다.
클래식의 미래는 객석을 채울 사람만 찾는 데 있지 않다. 언젠가 무대에 서고 싶은 사람에게 의자 하나를 더 내어주는 데서도 시작된다. 차 뒷좌석에 첼로를 싣고 다니다 끝내 베를린까지 닿은 후배처럼, 그 의자에 앉아 한 번이라도 긴 쉼표를 세어본 사람은 다시 객석으로 돌아가도 전과 같은 귀로 듣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