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기 위 검은 약·코 닦던 손수건 이제는 우리 일상에서 사라져 생활 수준·공중보건 발전 증거 삶은 눈에 보이지 않게 진보
지난 주말 출판계 선배인 김용범 선생님과 종로 관철동을 걷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여기가 이명래 고약이 만들어지던 곳이야.” 이명래 고약이라니! 완전히 잊고 있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 어딘가에 붙어 있던 검고 끈적한 약이 떠올랐다. 나는 어린 시절 거의 매달 몸에 종기가 났고, 그때마다 이명래 고약을 붙였다.
검고 끈적한 고약을 따뜻하게 데워 종기 위에 붙이면 며칠 뒤 고름이 빠져나왔다. 엄마는 그걸 두고 “종기의 뿌리가 빠졌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종기는 피부나 모낭 안으로 들어간 세균 때문에 생기는 염증이다. 세균과 싸우다 죽은 면역세포와 손상된 조직이 모이면 고름이 된다. 하지만 어린 내게 고약은 몸속 깊은 곳에 뿌리 박힌 나쁜 기운을 끌어내는 신기한 약이었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이명래가 세상을 떠난 뒤 고약은 두 갈래로 이어졌다. 둘째 사위 이광진은 충정로의 명래한의원에서 장인의 제조 방식을 지켰고, 의사였던 막내딸 이용재는 1956년 명래제약을 세우고 관철동에서 고약을 대량생산했다. 사위가 고약집의 손맛을 이어갔고, 딸은 전국 어느 약국에서나 살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꾼 셈이다. 내 몸에 붙였던 것은 막내딸이 대중화한 그 고약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자주 곪았을까. 특별히 허약해서는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목욕과 세탁을 지금처럼 자주 하지 않았고, 여러 식구가 수건과 이불을 함께 썼다. 놀다가 생긴 작은 상처도 대충 씻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영양 상태도 지금 같지 않았다. 피부에 늘 살아가는 세균이 작은 상처를 통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고, 그것이 곪을 때까지 버티는 일이 흔했다.
몸에는 고약을 붙였고 가슴에는 손수건을 달았다.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는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학교에 갔다. 이름표만큼이나 당연한 준비물이었다. 콧물이 흐르면 선생님이 손수건으로 닦으라고 했다. 잃어버리지도 않고 필요할 때 바로 쓸 수 있게 아예 옷에 달아놓은 것이다.
요즘 아이들도 감기에 걸리고 콧물을 흘린다. 콧물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라진 것은 콧물을 오래 달고 다니는 ‘코흘리개’의 풍경이다. 교실은 붐볐고 겨울의 집과 학교는 지금보다 추웠다. 종이 휴지는 흔하지 않았고, 콧물을 닦아줄 어른의 손도 늘 곁에 있지는 않았다. 가슴의 손수건은 그 시절 아이들에게 가장 간편한 위생 도구였다.
이명래 고약과 콧물 손수건은 모두 사라졌다. 깨끗한 물, 비누, 세탁기, 냉장고, 난방, 충분한 음식, 예방접종, 항생제, 건강보험과 가까운 병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생활 조건과 공공제도가 조금씩 나아진 끝에 아이들의 몸에서 고름이 줄고, 가슴에서 손수건이 떨어져 나갔다.
우리는 발전이라고 하면 고층빌딩과 빠른 자동차, 반도체와 인공지능을 떠올린다. 그러나 한 사회가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된 물건으로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종기 때문에 늘 고약을 붙이지 않아도 되고, 콧물을 닦을 손수건을 가슴에 매달지 않아도 되는 세상. 이런 변화는 국내총생산(GDP) 통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생활의 진보다.
공중보건은 성공할수록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곪지 않은 상처와 걸리지 않은 병은 기억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깨끗한 물과 학교 보건, 건강보험을 원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기기 쉽다. 관철동에서 갑자기 되살아난 이명래 고약의 이름은 지금의 평범한 일상이 오랜 사회적 노력 끝에 만들어졌음을 일깨워 주었다.
물론 좋아진 평균이 모든 아이의 현실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가난과 돌봄의 격차로 제때 씻고 치료받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과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옛 물건을 추억하는 이유는 가난했던 시절을 낭만적으로 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물건이 꼭 필요했던 생활 조건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다.
관철동에서는 이제 고약 냄새가 나지 않는다. 내 가슴에도 손수건을 고정한 옷핀 자국이 없다. 이명래 고약과 콧물 손수건은 한 시대의 아이들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물건이었다. 그러나 더 고마운 변화는 아이들이 그런 물건을 늘 몸에 지니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