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발생한 ‘통영 60대 여성 살인 사건’이 발생한지 50일째를 맞았지만 수사에 별다른 진척이 없어 주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29일까지 경찰은 아직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최대 1억원의 신고보상금을 내걸고, 피해자 유족의 동의를 얻어 지난 27일 오른쪽 뒤꿈치가 밖으로 꺾이는 용의자의 특이한 걸음걸이가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까지 공개하며 결정적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 ‘통영 60대 여성 살인 사건’…자정 무렵 접근해 2시간 머문 뒤 범행
이날 경남경찰청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6월 10일 새벽 통영시 도산면 원산리의 한 단독주택에서 발생했다.
당시 안방에서 잠을 자던 60대 여성 A씨는 외부에서 침입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찔려 숨졌다.
본채와 분리된 별채에서 잠을 자던 남편은 화를 면했다. A씨 남편은 같은 날 오전 6시 34분쯤 숨진 A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자정 무렵 주택 주변에 접근해 약 2시간 동안 머문 뒤 오전 2시쯤 범행을 저지르고 곧바로 뒤편 야산으로 달아난 것으로 추정했다.
주택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는 범행 장면 일부가 담겼다. 그러나 용의자가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복면과 장갑으로 신원을 철저히 감춘 데다 손에 흉기를 들고 있어 얼굴이나 신체 특징은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영상 속 인물을 건장한 체격의 30∼40대 남성으로만 추정하고 있다.
◆ 오른발 꺾인 걸음걸이…경찰이 내놓은 사실상 유일한 특징
경찰은 사건 발생 47일 만인 지난 27일 유족의 동의를 얻어 용의자가 주택에 침입하고 도주하는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체중이 실린 듯 오른쪽 뒤꿈치가 밖으로 꺾인 채 걷는 특이한 걸음걸이가 담겼다.
용의자는 침입할 때 두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으나, 범행 후에는 왼손에 흉기와 피해자의 가방을, 오른손에는 응급신고장비를 들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얼굴과 체격이 가려진 상황에서 걸음걸이는 시민이 실제로 알아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식별 정보다. 경찰이 영상 공개와 함께 보행 습관을 앞세운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 사라진 응급신고장비…동기는 여전히 안갯속
범행 동기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경찰은 금품을 노린 강도살인 가능성을 두고 수사해 왔으나, 현재까지 사라진 금품이 확인되지 않아 단순 강도살인이 아닐 가능성도 함께 열어두고 있다.
용의자가 A씨 집에 있던 가방을 들고 나가는 모습은 확인됐지만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보험 가입 내역에서도 범행 동기를 의심할 만한 특이점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택 앞에 설치된 노인 안전용 모션 감지기가 사라진 점도 수사 대상이다. 사람이 접근하면 불빛이 켜지고 비상 호출 기능까지 갖춘 장비로, 용의자가 도주할 때 오른손에 들고 나간 응급신고장비가 이 기기다.
경찰은 용의자가 자신의 움직임이 기록됐다고 오인해 증거를 없애기 위해 가져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 야산 낀 외진 농촌 주택…CCTV 140여대도 무용
수사가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사건 현장의 지형적 특성이다. 마을 가장 끝에 있는 외진 농촌 주택인 데다 뒤편이 곧바로 야산으로 연결돼 있다.
경찰은 주변 CCTV 140∼150대를 확보해 분석했지만 야간인 데다 산과 농지로 둘러싸여 있어 용의자의 범행 전후 이동 경로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경찰은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시민에게 최대 1억원의 신고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날 기준 일부 제보가 접수돼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만한 정보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어촌 지역 단독주택은 도심 아파트 단지와 비교해 사설 보안 시스템이나 공공 CCTV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침입 범죄가 발생했을 때 도주 경로가 야산이나 해안도로와 인접하면 물리적 추적도 어렵다.
이번 사건 역시 도심 외곽이라는 지리적 환경과 용의자의 철저한 증거 은폐 수법이 결합하며 수사 장기화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AI 조작 사진 확산…근거 없는 외국인 혐오로 번져
한편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통영 사건의 범인이라며 특정 남성의 얼굴 사진이 급속히 유포됐다.
그러나 경찰 확인 결과 이 이미지는 실제 용의자의 모습이 아니라 AI 등 이미지 편집 도구를 활용해 만든 조작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SNS에 떠도는 사진이 경찰에서 제공하거나 확보한 사진이 아니며 증거로 활용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조작된 사진이 뚜렷한 근거 없는 외국인 혐오 정서로 변질됐다는 점으로, 사진이 게시된 계정의 댓글창에는 범인이 외국인 같다거나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자로 보인다는 등 특정 대상을 표적으로 삼은 추측성 발언이 줄을 이었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강력 범죄의 수사가 진전이 없을 때 막연하게 추측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불확실성에 기반한 확신, 즉 확증 편향을 낳는다”며 “가짜 사진을 두고 외국인 같다고 유추하는 행동만으로도 외국인 전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증오감을 심어주는 포비아 현상을 유발한다”고 우려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