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WE 활용 논의 본격화…콜린알포 임상재평가 ‘새 변수’ 되나

FDA·EMA·NICE 등 RWE 활용 확대…RCT 한계 보완하는 실제 진료 근거 주목
국내도 심평원 RWE 가이드라인 마련…약제성과평가 영역서 활용 논의 구체화
콜린알포, 51만 명 코호트서 치매 전환 위험 감소…48주 임상서도 개선 신호

글로벌 의약품 평가 체계에서 실제 근거(Real-World Evidence·RWE)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무작위 임상시험(RCT)을 핵심 근거로 삼는 원칙은 유지하되, 실제 진료 환경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장기 치료 효과와 환자군별 치료 결과, 실제 사용 환경에서의 안전성 등을 보완적으로 살피려는 흐름이다.

 

글로벌 의약품 평가 체계에서 실제 근거(RWE)의 활용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콜린알포세레이트 임상재평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국내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약제성과평가를 위한 RWE 생성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약제 평가 과정에서 실제 진료 데이터 활용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재평가와 심평원의 약제성과평가는 별도 제도로, 이번 가이드라인이 콜린알포세레이트 임상재평가에 직접 적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실제 진료 기반 근거의 활용 가치가 커지는 흐름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임상재평가 논의에도 새로운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글로벌 약제 평가, RCT 중심에서 RWE 보완 활용으로 확장

 

의약품 평가에서 RCT는 여전히 허가와 급여 판단의 핵심 근거다. 엄격히 통제된 환경에서 약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진료 현장에는 고령 환자, 동반질환자, 다약제 복용자, 장기 복용 환자 등 임상시험에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환자군도 존재한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실제 자료(Real-World Data·RWD)와 RWE다. RWD는 전자의무기록, 건강보험 청구자료, 환자 레지스트리 등 실제 진료 과정에서 축적되는 자료를 말한다. RWE는 RWD를 분석해 약제가 실제 환자군에서 어떻게 쓰이고 어떤 치료 결과로 이어지는지 확인한 근거다. 

 

통제된 임상시험이 약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는 핵심 근거라면, RWE는 실제 진료 환경에서의 장기 효과와 환자군별 치료 결과를 보완적으로 살피는 데 쓰인다.

 

글로벌 규제기관과 보건의료 평가기관도 RWE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6년 21세기 치료법(21st Century Cures Act) 제정 이후 RWE 활용 체계를 정비해왔고, 유럽의약품청(EMA)은 실제 진료 데이터를 의약품 평가에 활용하는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도 실제 진료 데이터가 의료기술 평가와 지침 개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 국내도 변화 본격화…심평원, RWE 생성 가이드라인 마련

 

국내에서도 실제 진료 기반 근거를 약제 평가에 활용하려는 논의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6월 ‘약제성과평가를 위한 실제 근거(RWE) 생성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공개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RWD·RWE의 정의, 연구계획 수립, 자료 품질관리, 결과 보고 방법 등이 담겼다. 

 

홍승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은 “약제성과평가는 치료제가 실제 임상현장에서 환자의 건강성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이라며 “이번 가이드라인이 희귀·중증질환 등 근거의 불확실성이 큰 분야에서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심평원의 약제성과평가와 식약처의 임상재평가는 별개 제도인 만큼, 이번 가이드라인이 콜린알포세레이트 임상재평가의 직접 심사 기준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내 제도권에서 RWE 생성과 활용 기준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은, 장기 사용 경험과 대규모 관찰 데이터가 축적된 약물의 평가 과정에 참고점이 될 수 있다.

 

◆ 콜린알포, 51만 명 코호트서 치매 전환 위험 감소…48주 임상서도 개선 신호

 

콜린알포세레이트 임상재평가는 RCT와 RWE를 함께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경도인지장애는 질환 진행이 느리고 환자별 양상이 다양해 제한된 기간의 임상시험만으로 장기 치료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5년 발표된 51만 명 규모의 경도인지장애 환자 데이터 분석에서는 콜린알포세레이트 복용군이 비복용군보다 알츠하이머 치매 전환 위험은 10.1%, 혈관성 치매 전환 위험은 16.8%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48주 임상재평가에서도 전체 환자군(FAS)의 1차 평가변수는 통계적 유의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복약 기준을 준수한 참여자 집단(PPS) 분석과 보조지표에서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인지기능 개선 효과가 관찰됐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치매와 경도인지장애는 혈압이나 혈당처럼 약물 투여 후 수치 변화가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질환이 아니다”며 “48주 임상에서 확인된 개선 경향과 장기 코호트 데이터를 함께 놓고 콜린알포세레이트의 임상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콜린알포세레이트 시장의 주요 품목인 대웅바이오 '글리아타민'(왼쪽)과 종근당 '글리아티린'. 각사

 

◆ 대체 약물 제한적인 치료 현실…효과·비용·접근성 함께 봐야

 

임상 현장의 치료 현실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경도인지장애와 치매 전 단계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약제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은행엽제제나 니세르골린 등도 사용되고 있지만, 기전과 적응증이 달라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온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게 의료계의 시각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상대적으로 낮은 약제비와 오랜 처방 경험을 바탕으로 고령 환자와 초기 인지저하 환자에게 현실적인 치료 옵션으로 활용돼 왔다. 다만 그간 급여 범위를 둘러싼 소송과 처방액 급증 논란이 반복돼온 약제이기도 하다. 단기 재정 절감 관점에서만 접근할 경우 환자들이 고가 건강기능식품이나 의료 시스템 밖의 선택지로 이동해, 돌봄 부담과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항아밀로이드 항체치료제는 새로운 기전의 치료 옵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접근성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비급여로 사용되고 있으며, 연간 약값만 2500만~50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아밀로이드 PET 검사(100만~200만 원)와 뇌부종·미세출혈 등 이상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정기 MRI 검사 비용까지 더해지면 환자와 가족의 실제 부담은 더 커진다.

 

한 신경과 전문의는 “치매와 경도인지장애는 질환 진행이 느리고 환자별 양상이 다양해 단일 임상 지표만으로 약제의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실제 진료 데이터와 장기 사용 경험, 환자 접근성까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