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맹과 협력해 ICC 해체”… 곤혹스러운 일본

일본, 2024년 사상 처음으로 ICC 소장 배출
아카네 ICC 소장 “일본 정부의 역할이 중요”
동맹 美와 日 출신 ICC 소장 사이에서 ‘난감’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ICC) 와해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ICC 소장이 일본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다. 2024년 3월부터 재직 중인 아카네 도모코(赤根智子) ICC 소장은 일본 출신 법조인이다,

 

아카네 도모코(70) ICC 소장. 일본에서 검사와 대학 법학교수를 지낸 그는 2024년 일본인으로는 처음 ICC 소장에 올랐다. ICC 홈페이지 캡처

30일 일본의 영자 신문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모국을 방문한 아카네 소장은 지난 27일 오사카에서 강연을 한 뒤 취재진과 일문일답을 나눴다. 그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ICC 협약 당사국들에게 ‘ICC에서 탈퇴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2년 설립된 ICC는 한국, 일본 등 125개국이 회원국인데, 최근 들어 탈퇴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중국 등은 ICC 협약 자체에 가입하지 않았다.

 

아카네 소장은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는 베네수엘라가 최근 ICC 탈퇴를 발표한 점을 언급한 뒤 “다른 나라들도 (미국 행정부로부터) ICC를 떠나라는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ICC를 탈퇴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며 “분명 위기이지만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ICC를 지지하는 회원국들로부터 ICC의 정상적 운영에 필요한 지원을 예전보다 더 많이 받고 있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모국인 일본의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아카네 소장은 “일본은 ICC를 지지하는 아주 강력한 회원국들 중 하나”라며 “일본이 아시아 다른 ICC 회원국들의 탈퇴를 만류하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ICC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 전쟁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뒤 국제사회에서 곤경에 처했다. 재판부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카림 칸(56·영국) 검사장은 그 뒤 성범죄 정황이 드러나 파면됐다. 아카네 소장 본인도 재판관 시절 푸틴 체포영장 발부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정부에 의해 지명수배를 당했다. 미국은 맹방인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를 겨냥한 체포영장 청구·발부를 주도한 검사 및 재판관들을 제재 명단에 올린 상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C 청사 전경. 미국이 “동맹과 협력해 ICC를 해체할 것”이라고 공언한 뒤 회원국들의 탈퇴가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ICC 해체 수순에 돌입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은 이달 중순 ICC를 겨냥해 “국가들 위에 군림하는 초국가적 법률 집행 기관”이라며 “미국인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행정부의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동맹국과 협력해 벽돌 하나하나 떼어 내듯 ICC를 해체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를 두고 이란 공격을 명령한 트럼프 대통령이 ICC의 수사 및 기소 그리고 재판 대상이 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루비오 장관의 경고가 있은 뒤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아프리카의 차드,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 등이 ICC 탈퇴 의사를 밝혔다. 일본의 경우 자국인이 ICC 소장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이 같은 시도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일각에선 ICC 해체를 위해 ‘동맹과 협력하겠다’는 루비오 장관의 발언에 주목한다. 만약 트럼프가 정상회담 등을 통해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에게 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일본 정부가 과연 버틸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ICC 소장 배출을 외교적 성과로 내세워 온 일본 정부가 곤경에 처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