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미래] ‘기후 강자’ 유럽도 별수 없을까

살인적 더위로 수천명 숨지고
에어컨 설치 이념전쟁 휩싸여
시원함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저탄소 택할 수 있는 사회여야

‘탄소코인은 디지털 화폐가 되어야 하며, 탄소 격리 증명을 기반으로 지급되어야 합니다. 채찍뿐 아니라 당근도 제공함으로써 떠도는 글로벌 자본을 탄소 연소 감축에 기여하는 선순환적 행동으로 유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중앙은행들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거나 직접 발행한다면 이런 종류의 당근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입니다. … 중앙은행들이 그렇게 하게 만드는 것은 힘이 들겠지만, 그들이 나서기만 한다면 단연코 가장 강력한 정책이 될 겁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 ‘미래부’)

자, 우리 한번 솔직히 말해 보자. 지난 6월 우리가 이례적으로 선선한 여름을 즐기고 있을 때 유럽에서 들려온 최악의 폭염 소식에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살인적인 폭염에 추가 사망자가 수천명씩 쏟아지는데 각종 규제 때문에 에어컨 설치는 쉽지 않고, 한쪽에선 에어컨 쟁탈전이 벌어지는데 한편에선 에어컨 설치를 둘러싼 이념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신 사나운 기사들을 보며 어떤 느낌이었는지, 솔직히 말해 보자. 기후변화가 흔든 그들의 일상을 내 일처럼 걱정했는가?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

당신의 대답을 들을 방법이 없으므로 관련 기사의 댓글창을 본다. ‘그동안 온화한 기후에서 꿀 빨며 아시아 국가들 비하하면서 히히덕거리더니 꼴좋네’, ‘위선 떤다고 화력발전소 다 때려 부숴 전기가 부족해서 에어컨 못 돌림’, ‘하루이틀 잠깐 더우니까 에어컨 필요 없는 거지. 우리처럼 3개월 내내 열대야 시달려 봐라. 엄살은.’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이런 부류의 댓글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더우니까 별수 없지?’ 하는. 하지만 나는 본디 심성이 고운 사람이므로 왜 이런 묘한 통쾌함을 느꼈던 건지 곰곰 이유를 따져봤다. 늘 유럽의 기후정책을 벤치마킹하며 쌓였던 도덕적 열등감 때문 아니었을까. 자전거를 타고, 이산화탄소 1t에 10만원 가까운 비용을 치르고, 높은 에너지 가격도 감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후위기를 걱정한다면 저 정도 불편은 기꺼이 견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기준이 생겼다. 에어컨과 일회용품, 값싼 전기에 익숙한 편리한 삶을 사는 만큼 알게 모르게 ‘아직 멀었다’는 죄책감이 마음 한켠에 쌓였다. 그러다 폭염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눌려 있던 열등감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 들었던 건 아닐까. 그러나 이를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로 설명하기엔 어딘가 억울하다.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 속에 시원함을 찾는 마음은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고, 그건 생존을 위한 정당한 욕구다. 문제는 그 욕구를 저탄소 방식으로 충족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에어컨은 비교적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고효율 냉방과 단열·패시브 건축, 히트펌프 같은 인프라는 비싸거나 접근성이 떨어진다. 시원하게 살면서 탄소도 줄일 방법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고를 수 있는 보편적 선택지가 아니다. 저탄소 소비를 도덕적 결단의 영역에 남겨둘 게 아니라 많은 이가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대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건 비단 여름철 냉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저탄소 철강, 저탄소 시멘트에는 소위 ‘그린 프리미엄’이 붙는다. 더 비싸단 뜻이다. 저탄소 제품에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줘 가격을 낮추든, 기존 제품에 탄소비용을 물려 가격을 높이든 둘의 가격차를 어느 정도 좁혀야 저탄소 제품 소비가 늘고, 그게 공급을 늘려 가격을 떨어뜨리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SF 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의 소설 ‘미래부’는 올여름 유럽을 연상시키는 무더위로 시작한다. 인도에서 수천만명이 희생되자 인류는 탄소 감축에 보상을 주는 탄소코인을 비롯해 금융과 시장 규칙을 뜯어고친다. 저탄소 선택이 합리적이고 이익이 되도록 만들어야 기후위기를 넘을 수 있다는 게 작가의 메시지다.

시원하고픈 마음을 나무라기엔 우리의 여름은 너무 가혹하다. 시원함을 포기하지 않아도 저탄소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더 혹독해질 여름을 덜 미안한 마음으로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