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 여학생을 성추행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어 피해자가 고소당했습니다.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교육청이 나서 변호인단을 꾸리고, 교육감인 제가 가해자 측을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이 정식 무대에 섰다.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겠다”며 파격 행보의 서막을 알렸다.
오상도 사회2부 기자
가장 이목을 끈 건 드라마 ‘참교육’을 연상시키는 교권보호단 출범이다. 교권보호국 설치의 전 단계로, 교권보호전담관 모집에는 현실판 ‘나화진’을 자처하는 지원자 1800여명이 몰렸다. 50명을 뽑는 데 경쟁률만 36대 1이다. 교권보호전담관은 교권 침해와 악성 민원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원을 일대일로 맞춤 지원하는 비상근 인력이다.
지원자 면면도 다양하다. 변호사·의사·경찰·특수부대·교원 출신 등 여러 경험을 쌓은 도민들이 나섰다.
안 교육감이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회견에서 끄집어낸 악성 민원들의 사례를 듣다 보면 대부분 피가 머리로 쏠릴 듯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남학생 측 부모는 여학생이 온라인에 해당 내용을 올렸다는 이유로 되레 고소했다고 한다. 피해 학생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며 고통을 호소했으나, 가해 학생 측 부모는 학교를 찾아가 교사에게 폭언했다.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던 또 다른 학부모는 2명의 담임과 1명의 기간제 교사를 휴직·사직으로 내몰았다. 교육청 차원에서 절차를 밟자 그제야 교사에 대한 고소 취하와 사과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피해 교원들이 화해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인사 기득권으로 꼽히던 지역교육지원청 교육장 임명권을 내려놓은 ‘지역추천 공모제’ 역시 신선한 충격이다. 수원, 성남 등 11개 지역에서 3.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교육장들은 관행적 순환 보직에서 벗어나 지역 교육 공동체가 심사하고 발탁했다. 지역 사정을 몰라 현황 파악에만 1년을 허비하던 폐단을 끊고 풀뿌리 교육자치의 틀을 세웠다는 긍정 평가가 잇따른다.
반면 거침없는 감행 뒤에 깔린 우려의 시선도 만만찮다. 교육 주체들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현실세계에서 과연 드라마 같은 카타르시스를 끌어낼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자칫 의욕이 앞서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화성·오산 교육장 심사에 앳된 중학생이 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두고는 ‘학생 눈높이’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맞추는 세심한 설계가 아쉽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안 교육감 역시 충분히 이해한 듯 보인다. “‘속도가 빠르지 않으냐’고 하는데 ‘교권보호국’은 이재명 대통령 후보 미래교육자치위원장으로 일하며 결심했고, 다시 여론을 모으는 과정을 밟는 건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정책의 생명은 실현 가능성과 내적 일관성이다. 교육감이 나서 교권을 보호하고 교육 자치를 이루겠다는 결기는 교육 주체들에게 든든한 둔덕이 되고 있다. 교육 대전환을 향한 속도전이 당찬 성과로 이어질지, 숙의 부재라는 독배가 될지는 결국 섬세한 현장 감각과 정책 완성도에 달려 있다.